소리바다 다운로더 재설치 : Mac

3월 2nd, 2010

소리바다의 웹 다운로더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때 재설치 하는 방법입니다.
소리바다의 웹 다운로더는 어도비 에어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시 어도비 에어와 소리바다 다운로더, 두 가지를 제거 후 재설치 하실 것을 권장합니다.

1. Soribada Downloader는 Finder>응용프로그램>소리바다 폴더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우클릭 하셔서 휴지통에 버려주세요.

2. Adobe Air는 Finder>응용프로그램>유틸리티 안에 Adobe Air Uninstaller로 제거해주시면 됩니다.

3. 소리바다 웹 사이트에서 마음에 드는 음악을 다운로드 하시면 Adobe Air와 Soribada Downloader 최신버전이 자동으로 설치됩니다.

소리바다와 함께 즐거운 음악생활 하세요! ^^

소리바다 다운로더 재설치 : Window

3월 2nd, 2010

소리바다의 웹 다운로더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때 재설치 하는 방법입니다.
소리바다의 웹 다운로더는 어도비 에어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시 어도비 에어와 소리바다 다운로더, 두 가지를 제거 후 재설치 하실 것을 권장합니다.

1. 윈도우 제어판의 “프로그램 추가/제거”를 열어주세요.

2. 설치된 프로그램 중 “Adobe Air”를 선택하여 제거해주세요.

3. 설치된 프로그램 중 “Soribada Downloader”를 선택하여 제거해주세요.

4. 소리바다 웹 사이트에서 마음에 드는 음악을 다운로드 하시면 Adobe Air와 Soribada Downloader 최신버전이 자동으로 설치됩니다.

소리바다와 함께 즐거운 음악생활 하세요! ^^

소리바다의 새로운 메인! BETA OPEN!

2월 17th, 2010

소리바다의 새로운 메인 페이지가 Beta Open을 하였습니다. 음악을 듣기 더 편해진 메인화면, 한번 이용해보시고 소감도 많이 남겨주세요~^^

나만의 음악 창고, 마이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2월 11th, 2010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면 담기 버튼을 클릭하세요”

“소리바다의 마이컬렉션 화면”

나만의 음악 담기 기능, 마이컬렉션을 소개합니다.

평소에 좋아하는 노래를 두고 두고 듣고 싶은데 찾기가 불편하셨나요? 오늘부터 “담기” 버튼을 통해서 나만의 음악 창고를 만들어보세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간편하게 찾을 수 있고, 분위기가 비슷한 음악들을 모아 드래그 & 드랍 기능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깔끔한 화면 구성과 쉽고 편리한 관리 기능까지 매력적인 마이 컬렉션!

* 정말 편리한 드래그 & 드랍 기능 :
- 곡 보기 상태에서 플레이리스트 곡들을 원하는 곳으로 끌어다 놓아 순서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 곡 보기 상태에서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곡들을 다른 플레이리스트에 끌어다 놓으면 다른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할 수 있습니다.
- 앨범 혹은 아티스트 보기 상태에서는 마이컬렉션에 있는 앨범, 아티스트 이미지를 클릭하여 해당 곡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을 수 있습니다.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

SKT, 소리바다에 치명상을 입히다.

2월 11th, 2010

[소리바다이야기⑨] 3차 분쟁-프레임 싸움으로 승리한 서울음반

소리바다의 마지막 분쟁은 해를 넘겨 서울고등법원으로 넘어갔다. 1심에서는 소리바다가 승소했지만, 상대편은 다름 아닌 서울음반을 앞세운 SK텔레콤이이었다. 2심의 결과가 있기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상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들의 움직임은 과연 치밀하고도 치열했다.

이들의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알야두어야 할 조직이 하나 있다. 바로 ‘디발협’이라고 불리는 ‘디지털음악산업발전협의회’다. 이 조직은 2006년 8월 23일 소리바다가 1심에서 승소한 직후인 2006년 10월에(혹자는 9월로 기억하기도 한다)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서울음반을 비롯해 2006년 7월에 소리바다의 유료화정책을 비난했던 기업 13개 회사가 대부분 참여했다. 이후에는 세력을 더 키워 15개 회사까지 늘어났고, 2008년 12월에는 ‘음악콘텐츠산업협회’라는 이름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정식 사단법인체가 된다.

이 조직이 탄생하게 된 최초의 배경은 역설적이게도 2005년 5월경에 만들어진 ‘이동통신사와의 요율 협상을 위한 음악제작사 TF팀’이었다. 여기에는 서울음반을 비롯해 SM엔터테인먼트, 도레미미디어, 그리고 직배사 등 다수가 참여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서울음반이 SK텔레콤에 인수되면서 이 팀의 활동은 유야무야된다.

그러나 이 모임을 측면 지원하던 정부 프로그램이 있어서 네트워크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음악산업팀의 ‘음악산업포럼 사업’이 바로 그 프로그램인데, 이 사업을 통해 소위 메이저 음반제작사 및 유통사들이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고, 이동통신사의 요율 문제를 비롯해 소리바다 이슈 등이 의제로 상정되곤 했다.

그러다가 2006년 7월에 ‘소리바다 유료화 비난 성명’과 2006년 8월 ‘소리바다의 1심 승소’를 계기로 구체적인 조직의 모습을 띄게 된다. 그리고 당시 식물 단체나 다름이 없었던 한국음악산업협회를 대신해 음반업계를 대변하는 조직으로 대외적인 입지를 굳혀갔다. 그러나 당시 디발협은 엄밀히 말해 ‘임의 단체’에 불과했다. 법인체도 아니었고, 별도의 사무실도 없었으며, 디발협 명의의 직원도 없었다. 다만 보름에 한 번 정도 회원사 회의실을 돌며 실무자 사이에 모임을 가지는 게 전부였다. 실제로는 매우 ‘느슨한’ 조직이었던 것이다.

SK텔레콤을 충실히 대변했던 디발협
그렇지만 디발협이 대외적으로는 매우 기민하게 움직였다. 특히 소리바다와 관련된 소송에서는 대응논리를 만들어내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등 씽크탱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주도한 건 디발협 내에 포진한 ‘SK텔레콤 계열 또는 관계사들’이었다. 양대표는 당시 디발협의 활동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소리바다와 디발협 멤버들간에 치열한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비쳐졌습니다만, 사실은 달랐습니다. 당시 디발협에 소속된 기업들 중 상당수가 소리바다와 계약이 된 상태였고, 직배사들도 본계약은 안 됐지만 MOU를 통해 음원서비스는 허용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디발협의 성명서와 언론 인터뷰 내용을 보고 나중에 확인해보니 대부분의 경우 서울음반 등 친 SKT 회사들이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당시 멜론이 갖는 위치가 워낙 컸기 때문에 이들 기업의 독주를 견제하기가 쉽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양대표의 말대로 소리바다와 디발협이 한창 각을 세울 즈음 실제로 소리바다와 계약을 맺고 있던 회원사들은 도레미미디어, 블로코드테크놀로지, 아인스디지탈, 다이렉트미디어, 엠아이컨텐츠홀딩스, 유니버셜뮤직, 포니캐년코리아 등 7개에 달했다. 그리고 EMI뮤직코리아, 워너뮤직코리아, 소니BMG 등은 계약만 미루고 있을 뿐 실제로 음원서비스는 허용하고 있었다. 당시 소리바다와 계약을 거부하고 있던 곳은 서울음반과 킹핀엔터테인먼트, 엠넷미디어, 예전미디어 등 4개사에 불과했다.

‘소리바다1′에 대한 대법원 판결 파장
디발협은 해를 넘긴 2007년 1월 25일에 빅뉴스 하나를 접하고서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 바로 대법원이 ‘소리바다1′에 대한 음반복제금지 가처분 관련 이의신청 상고심에서 기각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판결이 나온지 며칠 뒤에 디발협은 성명서를 통해 ‘소리바다5′도 ‘소리바다1′과 다르지 않다며 공격적인 언론플레이를 펼쳤다. 당시 디발협 회원사의 좌장격인 서울음반은 ‘소리바다5′와 관련한 음반복제금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가 1심에서 패소했고, 고등법원에 항소한 상태였다. 성명서 관련 보도기사의 일부를 발췌해본다.

국내 주요 대형 음반및 배급사들이 소리바다에 대해 파상적인 공격에 나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디지털음악산업발전협의체는 5일 “서울음반, 유니버설뮤직, 워너뮤직코리아 등 국내 대표적인 음반사들이 소속된 디지털음악산업발전협의체는 지난달 25일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향후 보다 강력한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디발협은 지난달 25일 대법원 결정이 현재 서비스 되고 있는 소리바다5와는 무관 하다는 소리바다 주장에 대해 “이는 대법원의 결정문과 그 취지를 살피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에 근거한 여론 몰이”라면서 “소리바다의 저작권침해 방조 책임이 명확해졌고 현재 소리바다5도 유료 전환을 했을 뿐 소극적 필터링을 통해 여전히 상당 부분 저작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디발협은 “소리바다가 적극적인 저작권보호 기술 적용을 미루고 있는 만큼 향후 소송에 대해서도 반드시 이기게 될 것”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법적 대응 수위를 한층 높여 지난 7년 여의 소리바다의 디지털 음악 시장 교란 행위를 반드시 중단 시키겠다”고 의지를 밝혔다(2007년 2월 5일 파이낸셜뉴스).

뜬금없는 신조어 ‘적극적 필터링’
이때를 기점으로 디발협측은 ‘소극적 필터링’이란 용어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그들의 정의에 따르면, 소극적 필터링이란 ‘데이터베이스에 이용허락을 받지 않은 음원 정보를 저장했다가 사용자들이 이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곡을 요청할 때는 다운로드를 불허하는 방식’을, 적극적 필터링이란 ‘데이터베이스에 이용허락을 받은 음원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가 사용자가 여기에 부합하는 음악파일을 요청할 때만 다운로드를 허용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필터링이란 것이 본래 ‘전체는 그대로 두고 문제가 될 수 있는 일부를 걸러내는 행위’을 가리키는데, 후자(적극적 필터링)는 걸러내는 방식이 아니라 애초에 ‘허락된 일부만 제외하고 나머지를 모두 차단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필터링이라고 볼 수 없다.

“디발협 측에서 내건 적극적 필터링이란 말은 문법적으로 비문(非文)입니다. 그들이 언급한 적극적 필터링이란 권리자와 계약된 것만 유통하는 ‘등록제 방식’과 하나도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상에는 저작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권리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것들도 많고, 또 원작자가 권리를 풀어 아무나 쓸 수 있게 해놓은 저작물도 있습니다. P2P의 장점은 계약된 저작물 외에도 이런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인터넷문화가 활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적극적 필터링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개념을 P2P에 적용하라는 건 P2P를 그만 두고 멜론과 같은 서비스를 하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서울음반 등이 내놓은 ‘적극적, 소극적 필터링’ 논쟁은 일종의 프레임 싸움이었다. 본래 소송의 본질은 ‘소리바다가 현존하는 저작권보호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저작권 보호에 힘을 쓰고 있느냐’이고, 1심에서는 그 부분을 인정 받아 저작권법상의 면책 조항을 적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서울음반 등은 이 새로운 프레임을 내놓으며 소리바다가 ‘적극적 필터링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혹은 악의적으로 소극적 필터링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적극적 필터링을 적용하면 훨씬 더 안정적으로 저작권보호를 할 수 있는데, 그 대안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착한 P2P의 등장(?)
게다가 2006년 중반에는 느닷없이 ‘착한 P2P’라는 게 등장한다. 소리바다와 냅스터는 저작권보호에 소극적이니 ‘나쁜 P2P’이고, 저작권보호를 적극적으로 적용한 모델은 ‘착한 P2P’라는 이분법이었다. 이 용어를 만든 주인공은 당시 고려대 학내 벤처기업 ‘MW스토리’의 공동대표이자 수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강한씨와 류대걸씨였다. 이들은 2006년 3월에 냐온(www.nya-on.com)이라는 P2P서비스를 오픈했는데, 이 서비스에 저작권보호기능을 갖췄다며 스스로를 ‘착한 P2P’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P2P에 적용한 핵심 기술은 사용자들이 콘텐츠를 공유하기 전에 저작권자의 표식이 들어간 전자태그를 파일에 삽입하는 것이었다. 전자태그가 삽입되지 않은 파일은 냐온 P2P상에서 아예 유통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이들의 존재는 이후 법정에서 소리바다에게 매우 불리한 증거로 채택이 됐다. 이들 서비스가 상용화되면서 졸지에 소리바다는 ‘나쁜 P2P’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방식 대로라면, 사람들은 굳이 P2P 서비스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권리자와 계약된 음원 혹은 동영상 파일만 다운 받을 수 있다면, 그런 서비스는 이미 P2P가 아닌 수많은 웹서비스를 통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착한 P2P’로 세간에 회자됐던 ‘냐온’은 2007년 1월에 SK텔레콤이 투자한 음원유통을 대행하던 킹핀엔터테인먼트와 최초이자 최후의 음원공급계약을 맺은 뒤로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소위 착한 P2P였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제작사들이 외면한 이유는 그들이 적용한 저작권보호기술이란 것이 사용자들에게는 전혀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작권보호센터의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되다
또 하나의 변수는 저작권보호센터였다. 저작권보호센터는 문화관광부 산하 저작권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센터로 주로 저작권위반 사례를 적발하고, 이를 고소 또는 고발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조직에서 정기적으로 저작권 위반 사례조사를 조사해 발표했는데, 당시에는 P2P와 웹하드 업체의 저작권보호 실태를 모니터링하여 수시로 발표하고 있었다.

조사방법은 이랬다. 먼저 저작권 단체들로부터 저작권 보호 요청을 한 파일 리스트를 넘겨 받고, 이를 토대로 불시에 다운로드하여 각 서비스사업자 별로 불법 다운로드가 얼마나 일어나고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조사 대상에 소리바다가 포함된 것이다. 당시 모니터링을 주관한 단체는 저작권 관련 단체들의 연합체인 ‘사단법인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였다.

“소리바다가 불법 다운로드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됐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습니다. 모니터링이 있기 훨씬 전에 우리는 이미 음악 관련 저작권 신탁 3단체와 합의를 마친 상황이었습니다.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음악제작사들과도 계약을 마친 상황이었구요. 그런데 불법 다운로드를 단속하는 명단에 포함된 것이죠. 추측하기로는 우리와 소송을 벌이고 있던 몇몇 대형 음악제작사의 로비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소리바다와 음제협이 합의를 이룬 직후 온라인음악시장에서는 P2P 서비스의 유료화 및 합법화 여부가 중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이에 저작권 3단체는 2006년 5월에 P2P유료화를 위한 권리자 단체의 기술적 가이드라인을 필터링율 98%로 발표했다. 다시 말해 P2P서비스의 필터링율이 98%를 넘을 경우에는 저작권보호를 충분히 한 것으로 인정하고 합법적인 서비스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다.

앞서도 밝혔지만 소리바다는 그때 한국전자통신진흥원(ETRI)으로부터 필터링 기술을 이전 받아 활용하고 있었고, 그밖에도 ‘디지털 워터마크 제도’와 ‘그린파일 제도’ 등을 통해 기술적 한계를 보완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기 한 달 여 전인 2006년 4월에 소리바다의 필터링 기술은 ETRI에서 실시한 테스트에서 필터링율 98%를 통과한 것으로 인정 받았고, 그 결과가 저작권단체들에도 공식적으로 전달됐다. 사실 저작권단체들이 제시한 필터링율 98%는 소리바다의 ETRI 테스트를 토대로 설정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하튼 소리바다는 서울음반이 제기한 가처분신청 항소심을 앞두고 저작권보호센터의 모니터링을 받아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게다가 판결이 ‘소리바다가 적용한 필터링 기술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저작권보호센터가 발표하는 자료는 법정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채택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버렸다. 2007년 2월에 처음 실시한 모니터링 결과에서 소리바다의 필터링율은 18%, 3월에 실시한 모니터링 결과에서는 19.8%를 기록했다. 목표치인 98%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숫자였다. 그러나 이 두 번의 모니터링은 저작권보호센터 차원에서 진행된 일종의 워밍업이었다. 문화관광부가 주도한 공식적인 모니터링은 같은 해 8월과 10월에 있었고, 여기에서도 소리바다의 필터링율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1차 모니터링 결과에서는 68%로 나왔고, 2차에서는 80%가 나온 것이다.

소리바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였다. ETRI 테스트를 통과한 기술이었고, 디지털 워터마크에 그린파일 제도까지 2중, 3중으로 보호막을 쳤는데 98%는 물론 90% 근처에도 가지 못한 것이었다.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모니터링 결과는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저희도 내부에 자체적으로 저작권보호센터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필터링율을 조사했고, 항상 98%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거든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데이터였습니다.”

소리바다는 1, 2차 모두 발표 즉시 근거 자료를 요구했다. 모니터링은 어떤 방법으로 진행됐는지, 테스트에는 어떤 곡들이 사용됐는지, 필터링율은 어떻게 산출한 것인지를 밝혀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문화부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이번 모니터링은 행정처분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에 증빙자료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소리바다의 ‘결정적’ 패소
2007년 10월 10일. 소리바다 사무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전 직원이 1박 2일 일정으로 워크숍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날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소리바다에게 치명타를 안겨줄 판결문을 내놓았다. 2006년 8월 서울지방법원에서 소리바다가 한 번 승리한 적이 있는 서울음반 등의 ‘음반복제금지 가처분 신청’을 뒤집어 ‘인용’한 것이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소리바다에 ▷서울음반 등이 제시한 음원 공유 금지 ▷’소리바다5′ 서비스 중단 ▷ 간접강제(1일당 1,200만원) 등을 명령했다. 여기서 간접 강제란 ‘소리바다5′ 서비스를 조속히 중단시키기 위해 예정일에 중단하지 않을 경우 매일 1,200만원의 과태료를 지불토록 한 조치를 가리킨다.

소리바다도 이 판결이 갖는 중대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소리바다 P2P와 관련한 ‘마지막 소송’과 다름 없었기 때문에 판결 결과가 갖는 의미 또한 결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판결문을 접한 뒤 소리바다의 대응은 굉장히 비장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먼저 당시 판결문에 대한 소리바다의 성명서를 살펴보자.

소리바다는 현행 저작권법에 근거하여 합법적인 유료 P2P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소리바다5 서비스는 현 저작권법에 근거하여 저작권 보호 요청이 들어오는 음원들에 대해 ETRI에서 개발한 국내 최고의 음악인식기술을 이용하여 저작권 보호를 하고 있습니다. 소리바다와 분쟁 중인 서울음반 및 30여개 제작사의 음원에 대해서도 당연히 이러한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실제로 소리바다5 서비스를 사용해보시면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소리바다의 적극적인 저작권 보호 노력을 인정 받아 지방법원에서의 1심 판결은 승소하였으나, 이를 뒤집고 소리바다에 저작권 침해 방조 책임이 있다는 고등법원의 이번 결정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소리바다의 경우 현재 1,500개 이상의 권리자와 합법적인 음원공급계약을 체결하여 70만 사용자에게 유료악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저작권보호 조치가 이미 취해지고 있는 30여개 권리자의 음원을 더더욱 보호하고자 서비스 전체를 중지하라는 판결이 과연 저작권 보호를 위한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이번 가처분 신청은 SKT의 자회사인 서울음반 및 30여 개 기획사가 소송을 하였고, 현재 소리바다는 SKT의 멜론과 유료 음악서비스로서 1,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항상 언론보도를 통해 소리바다의 서비스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 디지털음악산업발전협의회(디발협) 역시 소리바다와 첨예하게 경쟁하고 있는 SKT의 관계사가 주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소송의 증거자료로 제시된 필터링 테스트 결과물에 대한 내용을 문화부에 정식으로 요청하였으나, ‘1차 모니터링 결과통보는 과태료 처분 등 구체적인 처분을 수반하지 않아 행정청이 증빙자료를 제공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라며 공개를 거부하였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아무런 증빙자료가 없는 테스트 결과물이 공개 문서로 분류되고, SKT 자회사인 서울음반 및 30여개 제작사를 통해 이번 판결에서 결정적인 소송 자료로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소리바다는 분명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서비스는 계속될 것이고, 더욱 진화할 것입니다. 권리자와의 상생을 위해 변화하고,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2007년 10월 18일

소리바다 대표이사 양정환

성명서에도 나와 있듯이 당시 고등법원이 지방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결정적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필터링율’이었다. 문화부와 저작권단체가 합의한 P2P 필터링율의 가이드라인은 98%였는데, 소리바다를 대상으로 진행된 여러 번의 필터링 테스트에서 그 기준을 충족시킬 만한 결과가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따라서 소리바다가 채택한 필터링 기술은 저작권을 보호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기술로 받아들여졌다.


서울고법 패소 직후 소리바다 홈페이지에서 진행된 응원 캠페인

적극적, 소극적 필터링 개념을 채택한 재판부
두 번째는 법원이 ‘적극적, 소극적 필터링’이란 개념을 채택한 것이었다. 법원의 논조대로 표현하자면, 저작권보호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적극적 필티렁 기술이 존재하는데도 소리바다는 ‘소극적 필터링’을 채택해 저작권보호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한 법원 판결문의 일부를 인용해본다.

소극적 필터링 방식과 적극적 필터링 방식은 모두 음원의 특징을 추출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한 후 이용자가 다운로드를 요청할 경우 해당 음원 파일에 대한 필터링을 한다는 점에서 기술적인 차이가 없으며, 단지 양 방법은 이러한 공통된 기술을 어떠한 정책에 따라 적용할 것인지에 차이점이 있을 뿐이므로, 소극적 필터링 방식의 구현기술이 있다면 적극적 필터링 방식을 구현함에 있어 기술적으로는 어려운 것으로는 보이지 아니한다.

여기서 법원이 ‘적극적 필터링 방식’을 구현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고 판단한 근거는 이른바 ‘착한 P2P’로 알려진 ‘냐온(www.nya-on.com)’이 적극적 필터링 방식을 차용해 정상적으로 서비스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냐온’을 정상적인 서비스로 인정한 근거는 그해 1월에 있었던 ‘킹핀엔터테인먼트’와의 유일한 음원공급계약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킹핀엔터테인먼트는 다름 아닌 SK텔레콤이 투자한 음원을 주로 유통해주던 대행사였다.

왜 킹핀엔터테인먼트 외에는 착한 P2P와 계약한 음악제작사가 없었을까? 그 어떤 음악제작사들도 착한 P2P와 계약하지 않았는데, 왜 킹핀엔터테인먼트는 그들과 계약을 맺었을까?

이제 그 말 많았던 문화부의 필터링율 문제를 짚어보자. 앞서 밝혔듯이 재판에 결정적인 증거자료로 채택될 수 있는 문화부의 공식적인 필터링율 조사는 처음부터 비공개로 진행됐다. 소리바다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결과치였기 때문에 강하게 문제제기를 했지만, 정부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행정처분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에 증빙자료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해석한다면, “소리바다 입장에서는 필터링율 결과가 치명적으로 중요할지 모르지만, 문화부 입장에서는 필터링율 조사를 법원에 증거로 제출할 목적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알려줄 수가 없다” 쯤 되겠다.

유통이 허락된 음원으로 필터링율 조사?
그러나 판결이 나고 얼마 안 있어 필터링율 조사에 대한 다양한 의혹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제기된 문제는 조사대상 샘플에 ‘합법 음원’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었다. 필터링율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P2P에서 유통돼서는 안 되는 음원의 목록을 정해야 하는데, 그 목록에 소리바다에서 유통해도 되는 합법적인 음원이 다수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이럴 경우 합법음원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는 100% 저작권보호가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가 되기 때문에 결과치가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문화부에 수차례 공식적으로 자료 열람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문화부의 지시로 필터링율 조사를 진행한 저작권단체연합회는 조사 곡목 중에서 4개만 공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2개가 소리바다와 유통계약이 돼 있었던 겁니다. 당시 조사가 얼마나 날림으로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 아닙니까?”


합법음원이 모니터링에 포함된 사실이 드러났던 ‘2차 모니터링 증거자료’ 관련 공문

그뿐만이 아니었다. 문화부는 조사방법 또한 판결이 있고 한참 뒤인 11월 가까이 되어서야 밝혀졌다. 당시 문화부가 밝힌 필터링율 조사방법은 ‘(다운로드가 100% 불가능한 저작물 수 / 장르 분류별 조사대상 샘플 수) X 100′ 이었다. 이를 구체적인 조사 방식으로 빗대어 설명하자면, 조사대상 음원을 100곡이라고 가정했을 때 다운로드 시도를 각각 100번씩 시도해서 한 번도 안 뚫린 음원의 갯수가 몇 개인지를 퍼센티지로 환산한 것이다.

사전 합의나 공지가 없었던 필터링 조사 방법
이러한 조사방법은 애초에 업계에서 생각하고 있던 필터링율 조사방법과는 크게 차이가 있었다. 저작권단체들이 98%로 합의할 당시의 필터링율이란 ‘저작권보호가 요청된 특정 음원을 다운 받기 위해 100회 시도했을 때 실제로 필터링이 된 횟수의 비율’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즉 조사대상 음원 100곡에 대해 각각 100번씩 다운로드를 시도하여 각각의 필터링율을 내고, 그것을 합친 전체 평균을 내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화부는 당시 통념과는 크게 다른 방식으로 필터링율을 조사했으면서도 사전에 그 방식에 대한 어떠한 합의나 공지를 시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과태료를 부과할 때가 되어서야 뒤늦게 필터링율 조사 방식을 공개한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테스트를 하고 그 결과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사전에 반드시 그 기준과 방법에 대해 합의와 동의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문화부는 그런 절차를 깡그리 무시했습니다. 그 기준을 밝혀달라는 우리의 요구도 외면했습니다. 왜 문화부가 그렇게 했는지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필터링율 계산 방법이 공식적으로 언급됐던 문화부 관련 공문(출처 : 아이뉴스24)

당시 필터링율 조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도 있다. 서울고등법원이 판결문에 인용한 필터링율은 문화부의 1차 모니터링 결과였는데, 거기에 소리바다는 68%로 나왔고, 소리바다보다 훨씬 불법 다운로드 받기가 쉽다고 알려졌던 모 회사는 99%라고 발표가 됐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나왔을까?

“필터링율 99%를 기록했던 회사의 P2P에서는 사용자들이 음악파일을 주로 집(zip)파일 형태로 주고 받았습니다. 문화부의 모니터링에서는 이런 점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거죠. 이 점에 대해서는 당시 문화부의 저작권산업팀장도 인정을 했습니다. 조사 시점에 맞춰 그 회사에서는 MP3 확장자를 가진 파일의 유통을 아예 막았던 거라구요.”

뒤집힌 판결이 앗아간 것들
하지만 소리바다는 그 허술했던 필터링율 조사 덕분에 서비스 중지를 명령하는 판결문을 받아 읽어야 했다. 비록 판결 결과에 불복해 이의제기를 신청하고, 대법원에 상고도 해봤지만, 판결이 가져온 엄청난 파급효과를 막아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한 마디로 ‘엎어진 물’이었던 것이다.

당시 소리바다의 주가는 그야말로 고공행진 중이었다. 2006년 11월에 코스닥 우회상장 이후 2007년 3월에 삼성전자와 모바일 음악서비스 개발과 관련한 MOU를 맺으면서 주가도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해 서울고법 판결이 있기 직전에는 주당 6,50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판결 직후 주가는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고, 삼성전자와의 협력사업도 수포로 돌아갔다.

“삼성전자와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삼성 측은 모바일 P2P 모델을 원했지만, 저는 아예 새로운 개념의 모바일 전용 음악서비스를 제안했고, 또 사업도 구체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판결이 나고 모든 것이 없었던 걸로 돼버린 것이죠. 삼성전자와 일이 무산 되고 나서 얼마 안 있어 노키아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거의 흡사한 모바일 음악서비스인 ‘Comes with music’을 발표하더군요. 정말 아까웠습니다.”

필터링 강화된 ‘소리바다6′으로 서비스 중단 위기 넘겨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판결 결과 때문에 ‘소리바다1′과 ‘소리바다3′에서처럼 서비스가 중단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리바다는 그해 12월경에 필터링 기능을 더욱 강화한 ‘소리바다6′을 내놓았다. 이 모델은 지금도 소리바다의 P2P서비스로 운영되고 있다.

판결이 있은 직후 소리바다는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추가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는 했지만, 소리바다 소송과 관련한 드라마는 여기서 막을 내렸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소리바다는 이듬해 더 이상의 소송을 진행하지 않고 서울음반 등과 음원공급계약을 체결했고, 서로를 향해 진행하던 소송도 취하했다. 그러나 소리바다의 시장 지위가 다시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이 판결이 소리바다에게는 치명상이었던 것이다.

서울음반은 2006년 8월말 소리바다에 패한 뒤 판결을 뒤집기 위한 전략으로 ‘프레임(frame) 싸움’을 채택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주효해서 재판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왜 중립을 지켜야 할 정부가 억지스럽고도 엉성하기 짝이 없는 필터링 테스트를 고집해 재판에 개입한 결과를 낳았을까 하는 점이다. 문화부는 과연 이런 결과를 의도했을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였을까?

(다음은 ‘정부는 과연 중립을 지켰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위 포스트는 소리바다의 10년을 되돌아보는 의미에서 소리바다 대표이사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소리바다의 탄생부터 대중화, 분쟁 그리고 현재 / 음악관련 중요한 이슈까지 광범위하게 다뤄질 예정이며 원작자의 동의하에 Talk Soribada에도 함께 개재됩니다. 원문은 괴나리봇짐님의 블로그 <a href=”http://timshel.kr/”>http://timshel.kr</a>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리바다와 SKT와의 한판 승부

1월 29th, 2010

[소리바다이야기⑧] 3차 분쟁-1라운드에서 소리바다가 승리하다

소리바다는 우여곡절 끝에 2006년 2월 음제협과 협상에 성공하고 본격적인 ‘합법 서비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소리바다가 내놓은 모델은 전면유료화를 도입한 ‘소리바다5′였다. 이 서비스는 2006년 3월 1일에 베타서비스를 시작했고, 같은 해 7월 7일에 정식 버전을 오픈해 우리나라 최초의 합법적 P2P 서비스 시대를 열었다.

소리바다5 베타서비스 이미지

권리자 단체와의 순조로운 협상

물론 이 모델을 계기로 소리바다와 음악 권리자 단체들간의 분쟁은 깨끗하게 마무리됐다. ‘소리바다5′ 베타서비스가 시작된지 닷새 뒤인 3월 6일에 음제협(음원제작자협회)의 가처분신청이 취하됐고, 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의 손해배상 소송 움직임도 없던 일이 됐다.

그리고 5월 26일에는 음저협과, 같은 달 29일에는 예술실연자단체연합회(이하 예단연)와 과거보상금 및 전면 유료화 도입에 대한 합의도 이뤄냈다. ‘과거보상금’이란 소리바다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권리자 단체들과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 소리바다 이용자들이 무료로 음원을 사용한 데 대한 보상금을 가리킨다. 그리고 예술실연자단체연합회란 가수와 연주자의 저작권상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로, 작사/작곡/편곡자를 대변하는 ‘음악저작권협회’와 제작자를 대변하는 ‘음원제작자협회’와 더불어 ‘음악저작권 신탁 3단체’로 불린다.

그리고 해를 넘긴 2007년 1월에는 소리바다와 저작권 신탁 3단체(음저협, 예단연, 음제협)들 간에 ‘음악저작물 사용료 징수규정’(이하 징수규정)이 합의된다. 음악저작물 사용료 징수규정이란 음악저작물이 다양한 형태로 사용됐을 때 그 대가를 지불하는 최소한의 지침을 가리키는데, 예를 들어 ‘방송’에 사용됐을 때, ‘노래방’에서 불려졌을 때, ‘다운로드’ 받았을 때처럼 다양한 경우에 맞춰 해당 서비스사업자로부터 ‘사용요금’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를 징수하는지 규정한 것이다. 이 규정은 저작권 신탁 3단체와 서비스사업자가 합의해 초안을 만들면, 이를 저작권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최종적으로 문화부에서 승인함으로써 확정된다.

소리바다 서비스와 관련해 이 규정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소리바다가 ‘합법적인 서비스’라는 사실을 정부가 인증한 것이나 마찬가지의 효과를 가진다. 그러나 당사자간에 합의한 이 규정이 최종적으로 정부의 승인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가 않았다. 소리바다 건이 포함된 징수규정은 1년이 훌쩍 지난 2008년 2월에 가서야 승인됐고, 그 내용 또한 대폭 수정됐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다음 글을 통해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그런데….SK텔레콤이 싸움에 뛰어들다

어쨌든 여기까지만 보면 소리바다를 둘러싼 분쟁은 일단락 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음제협이 음악제작자들 사이에서 대표성을 인정받고 있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다. 소리바다와 권리자단체들 사이에 합의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자, 이제는 기업들이 전면에 나섰다. 이때 업계 분위기를 주도하며 전위대 역할을 하던 기업이 바로 ‘서울음반’(지금의 로엔엔터테인먼트)이다.

YBM서울음반 당시 로고

서울음반이 어떤 기업인가. 당시 우리나라 최대 음반제작 및 유통사 아니던가.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다. 서울음반은 국내 최대 온라인음악서비스인 ‘멜론’을 운영하던 SK텔레콤의 자회사다(SK텔레콤은 2004년 11월에 ‘멜론’을 세상에 내놓았고, 2005년 5월에 ‘YBM서울음반’을 인수했다). 서울음반이 소리바다 사냥에 앞장 섰다는 것은 경쟁 서비스 ‘멜론’을 갖고 있던 SK텔레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실제로 이 소송에 SK텔레콤의 법무팀이 적극 개입했고, SK텔레콤에서 멜론서비스 등을 담당하고 있던 신원수 콘텐츠사업본부장(상무)이 소송 과정 전체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신원수 본부장은 그 후 2007년에 서울음반의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지금도 그 후신인 로엔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소리바다와 서울음반과의 분쟁은 엄밀한 의미에서 소리바다와 SK텔레콤간의 싸움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서울음반은 소리바다와 음제협이 합의문을 발표한지 한 달만인 2006년 3월 29일에 ‘소리바다5′를 상대로 한 음반복제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한다. 이때 서울음반은 업계의 대표성을 내세우기 위해 서울음반을 제외한 32개 기업과 개인을 병기했다. 뒤이어 4월 11일에는 SK텔레콤이 투자한 회사인 JYP엔터테인먼트가, 14일에는 YG엔터테인먼트가, 5월 17일에는 예전미디어가, 6월 5일에는 소니비엠지코리아가 각각 ‘소리바다5′를 상대로한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양대표는 당시 소송은 분명히 ‘서울음반’과의 싸움이었다고 분명하게 정리했다.

“‘소리바다5′와 관련한 분쟁은 겉으로 보기에는 음반업계 다수가 참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울음반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서울음반이 그때 소송에 참여했던 기업과 개인들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소송을 주도했고, 나머지 기업들은 서울음반과 보조를 맞추는 형식이었습니다.”

서울음반이 주도한 소송에 참여한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음제협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소리바다와 음제협의 합의 사실 자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소리바다가 돈으로 협회를 회유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로 P2P에 필터링 기술 적용

그들이 소송을 위해 문제 삼은 건 당시 무료로 진행되던 ‘소리바다5′의 베타서비스였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리바다가 베타테스트라는 명목으로 저작인접권을 여전히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베타서비스는 4개월이라는 제법 긴 시간 동안 지속됐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소리바다5′는 국내 최초로, 아니 세계 최초로 P2P서비스에 ‘필터링 기술’을 적용시킨 모델입니다. 어떤 기술이든 처음부터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히 필터링 기술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수백만 곡에 적용돼야 할 기술입니다. 적용해야 할 곡들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형태의 버그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베타테스트에 걸린 4개월은 그 기술을 상용화시키기 위한 정말 최소한의 기간이었습니다.”

필터링 기술이란 저작권 보호를 요청한 파일이 인터넷 상에서 유통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기술인데, 소리바다에 적용된 필터링 방식은 음악인식기술을 기반으로 했다. 음악인식기술이란 음원의 파형을 분석하여 그 음악이 어떤 곡인지를 인식토록 하는 것으로 그 구현방법이 인간의 지문인식 기술과 유사하다 하여 ‘음성지문(Audio Fingerprint) 기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소리바다에 적용된 필터링 기술은 저작권 보호 요청이 된 음악파일에서 ‘음성지문’을 추출해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면서, 동일한 지문을 갖는 음악파일이 P2P시스템에 유통되려고 할 때 이를 차단하는 방식이었습니다. P2P에서는 사용자들이 파일명 같은 메타정보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사용하지는 않기 때문에 당시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필터링 기술인 ‘키워드 차단’이나 ‘텍스트 필터링 방식’은 전혀 효과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음악인식기술을 활용한 필터링 방식을 도입하게 된 것입니다.”

소리바다에 적용된 필터링 기술은 베타테스트 기간 중인 4월 18일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하 ETRI)의 기술테스트를 통과했고, 8월 1일에는 ETRI와 필터링 기술 관련 기술 이전 계약을 정식으로 체결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11월 8일에는 국내 최고의 필터링 기술업체인 뮤레카와 MOU를 체결하고, 이듬해인 2007년 1월 23일에는 뮤레카가 개발한 필터링 솔루션을 도입한다.

하지만 서울음반 등은 세계에서 처음 적용되는 필터링 기술에 대해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특히 정식 버전이 아닌 베타테스트 중인 서비스를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냈다는 사실만 봐도 당시 소송은 다분히 감정적으로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소리바다와의 협상의 가능성은 스스로 차단했던 것이다.

소리바다와 계약한 기업들이 왜 잠잠했을까?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그때만 해도 소리바다는 소송에 참여한 제작자들보다 훨씬 많은 제작자(당시 기준으로 약 340여개 음반제작사)들과 이미 계약을 하고 음원을 유통하고 있었는데, 왜 그들의 목소리는 세상에 들리지 않았을까. 소리바다가 망가지면, 소리바다와 계약한 그들이 수익도 줄어들 게 뻔한데, 왜 그들은 일부 제작자의 공격적인 소송 움직임에 전혀 제동을 걸지 못했을까.

“그때 우리는 이미 수많은 제작자들과 계약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사석에서는 우리의 입장을 지지해줬지만, 공개적으로는 거의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제작사들이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던 곳이 바로 ‘멜론’이었기 때문입니다. 괜히 소리바다를 두둔했다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분위기였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정말 외롭게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서울음반을 비롯한 ‘일부 제작사’들의 목소리는 제작업계를 ‘대표하는 목소리’로 부풀려졌다. 그들은 ‘음제협을 비롯해 돈이 궁했던 중소규모의 제작사들은 소리바다의 협상자금에 매수됐고, 그로부터 자유로운 메이저 음악제작사들이 혼탁한 음악시장을 바로세우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것’이라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해갔다.

앞선 글에서 필자는 2003년 3월에 문화부가 ‘온라인 음악시장 유료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뒤로 ‘소리바다와 권리자간의 갈등’이 ‘소리바다와 경쟁 서비스사업자간의 갈등’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소리바다5′와 관련된 소송은 그 변질된 갈등의 결정판이었다. 소리바다는 그때 매출 면에서나 회원수 면에서나 멜론의 턱 밑까지 바짝 쫓아와 있었다.

멜론 사이트 이미지

“당시 온라인 음악시장은 소리바다와 멜론이 양분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업계 추정치로는 멜론이 유료회원 80만명이었고, 소리바다가 70만명이었습니다. 대등한 규모였죠.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서비스들은 많아봐야 30만명 대로 격차가 제법 크게 났습니다.”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대기업이 2위를 달리고 있는 중소기업을 향해 칼을 빼든 것이다. ‘소리바다5′를 둘러싼 분쟁의 본질은 바로 이것이었다.

소리바다의 유료화와 업계의 반발

‘소리바다5′는 4개월 여 동안의 베타테스트를 마감하고 2006년 7월 10일에 정식 버전을 오픈한다. 그런데 이 때 또 한 번의 소동이 일어난다. 소리바다가 채택한 가격정책이 ‘월정액 3,000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멜론은 월정액 4,500원에 기간제 DRM이 부착된 음원을 무제한 다운로드하는 서비스를, 벅스 등 스트리밍을 주로 하는 사이트는 월정액 3,000원에 무제한 듣기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리바다가 내놓은 월정액 3,000원에 DRM이 없는 음원을 무제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상품은 분명히 ‘파격적’으로 보였다.

급기야 서울음반 등 13개 음악기업들은 ‘소리바다의 기만적 유료화 정책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놓았다. 성명서의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소리바다의 기만적 유료화 정책을 규탄한다소리바다가 전면적인 유료화를 시작한지 보름이 지났다. 지난 수년간 온라인 불법 음악사이트의 폐해는 가히 파괴적이었다. 상당수의 제작사와 음반사가 도산하였으며, 살아남은 회사들도 적자에 시달려왔다. 정신적, 물적 피해는 산출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나 수많은 음악산업 종사자들의 희생의 결과로 벅스를 비롯한 많은 불법 사이트들이 유료화되었으며, 시장의 질서도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정상화의 기로에서 소리바다의 유료화는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다. 불법 사이트를 대표하는 소리바다가 갖는 상징성이 크고, 음악시장의 안정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소리바다의 지속적 불법 행위에도 불구하고, 일부 음반(원)제작사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소리바다의 정상화를 지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유료화 과정에서 보여준 소리바다의 태도에 우리는 깊은 실망과 배신감을 느낀다. 저작권 보호의 약속은 유료화가 시행된 지 보름이 넘도록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미승인 음악 파일들이 자유롭게 교환되고 있다. 인내와 관용으로 정상화를 지원한 음악(원)제작사들의 소박한 기대를 저버렸음은 물론이다. 결국 소리바다는 자신들에게 집중되는 비난의 화살과 법률적 제재를 회피하기 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료화를 선언(?)하였을 뿐이었다.

이에 음악산업의 발전과 온라인 음악서비스의 정상화를 염원하는 음반(원)제작사들은 타인의 소중한 권리를 짓밟고 시장파괴에 앞장서고 있는 소리바다의 기만적 행위를 규탄하며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승인되지 않은 음악 파일의 교환을 즉각 중단하라
2006년 초, 소리바다는 전면적인 저작자 권리보호와 유료화를 선언하였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권리보호와 유료화의 의지가 있었다면, 그리고 불법적인 행위로 많은 음악 제작자들에게 고통을 주었음을 자각하였다면, 권리보호를 표방한순간부터 승인 되지 않은 음악파일의 교환을 차단했어야 옳다. 그러나 소리바다는 베타서비스라는 명분 하에 미승인파일의 교환을 수 개월 동안 묵인하였다. 그러한 행위가 명백히 불법임을 수 차례 주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허울뿐인 베타서비스는 이후 6개월이나 지속되어, 합법화를 위한 테스트 기간에 불법이 자행되는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백번을 양보하여 서비스 안정화를 위한 베타서비스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은 상식적인 수준(통상적으로 음악업계에서 인정하는 베타서비스 기간은 1개월이다)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소리바다는 석연치 않은핑계와 변명을 들며 베타서비스 기간을 계속 연장하였고, 미승인 파일을 무려 6개월간이나 자유롭게 공유, 교환하도록매개하였다.

불법적인 파일의 교환은 전면 유료화 시행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우리는 소리바다가 일말의 양심이라도 가졌다면 유료화 시작일인 7월10일 이후에는 미승인 파일을 차단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유료화 시점으로부터 보름이 지난 오늘까지도 승인되지 않은 파일이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그들의 기만적인 행태가 쏟아지는 비난과 법률적 책임을 회피해보려는 얄팍한 술책에서 나왔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 파괴적인 정액제 요금 정책을 중단하라
소리바다 요금 정책의 핵심은 정액제이다. 3,000원을 지불하면, 소비자는 조건의 제한 없이 1개월간 무제한 파일 교환이 가능하다. 3,000원만 내면 자신의 컴퓨터에 좋아하는 모든 음악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데 누가 다시 대가를 지불하고 음악을 구매 하겠는가? 더구나 한번 다운로드한 음악은 해당 파일을 삭제하지 않는 이상 지속적으로 이용 가능하다. 해당 파일에 대한 영구적인 소유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용료(요금)가 음악 이용에 대한 대가라는 측면에서 볼 때에도 정액제는 매우 부적절하다. 수십만 곡의 제공에 대한대가로 고작 1,200원(3,000원의 정액요금 중 음악(원) 제작자에게는 단지 1,200원만 배분된다)을 받는다면 누가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음악제작에 나서겠는가? 이러한 요금 체계 하에서는 음악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도, 권리자에대한 정당한 대가를 보장할 수도 없다. 소리바다의 정상화에 공감하여 음원의 사용을 허락한 저작자들과 음제협도 정액제에 명백히 반대하고 있다.

소리바다의 정액제는 ‘음악의 대가는 매우 하찮은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키기 쉽다. 또한 어렵게 정착하고 있는 온라인 음악시장의 유료화 기조를 송두리째 붕괴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소리바다의 정액형상품을 시장 파괴적인 정책으로 규정한다. 자신들만 살자고 모든 음악제작자와 힘겹게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 선량한음악서비스 업체 모두를 죽이자는 이기적인 정책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리바다의 저의와 시장파괴적 정책에 우리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저작권 보호를 위한 기술적 보호장치를 보완하라
유료화 선언 시점에, 많은 음악 권리자들과 IT 전문가들은 소리바다가 보유하고 있다는 기술적 보호장치의 안전성에의구심을 제기하였다. 반면 소리바다는 자신들의 필터링 기술이 98% 이상의 신뢰도를 가지며, 음악(원)제작자들의권리를 거의 완벽히 보호할 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그러나 음악 권리자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유료화를 실시한지 보름이 넘은 지금도 누구나 소리바다에 가면 원하는 음악을 언제든지 다운 받을 수 있다. 소리바다가 보호장치를가동하고 있다는 음악마저도 얼마든지 불법적인 공유와 교환이 가능하다. 자신들이 그토록 내세우던 기술적 보호장치의 불완전성을 스스로 입증하는 셈이다.

만약 소리바다의 주장대로 완벽한 필터링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면 이것 또한 기술적 보호장치로서 함량 미달임을 자인하는 셈이다.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음원의 80% 는 새롭게 발표되는 신곡이다. 신곡의 유통기간은 고작 3-4개월에불과하다. 효과적인 필터링을 위해 그토록 오랜 정보 축적 시간이 필요하다면, 신곡에 대해서는 전혀 대응력을 갖추지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음악제작자는 필터링 준비 기간에 회복하지 못할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어쨌든 보호장치의 기술적 한계 때문인지 고의적 방조인지는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현재 필터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아니함은 분명하다.

저작권 보호 요청 절차를 개선하라
저작권 보호를 위한 일차적 조치는 사이트 운영자의 의지로서 승인되지 않은 음악(원)이 공유, 교환되지 않도록 하는것이다. 그러나 소리바다에서는 전면적인 유료화를 천명한 7월10일 이후에도 대부분의 파일이 교환되었다. 이에 음악(원) 권리자들은 승인되지 않은 음악파일의 저작권 보호를 요청하였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저작권 보호 요청에는 특별한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소리바다가 음악(원) 권리자들에게 요구한 프로세스는 기가 막히다. 소리바다에서 만든 신청서를 작성하고, 저작권의 소유를 입증하는 서류, 법인인감증명, 법인등기부등본 등의 서류를 첨부하여 신청하면 자신들이 권리를 심사하여 승인하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필터링을 요청하는 모든 원본 음악파일을 소리바다 시스템에 올려야 한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요청을 하고, 누가 누구를 승인하겠다는 것인가? 물건의 주인이 자신의 물건임을 입증하며 도둑에게 사정하고 애원해야 도둑질을 안 해주는 아량을 베풀겠다는 말인가? 이런 적반하장의 모순된 인식을 가진 집단을 파트너로하여 음악산업의 발전과 권리보호를 논함이 가능한가?

결국 소리바다의 의도는 승인 음원에 대해서만 파일 교환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모든 파일의 교환을 일반적으로 허용하고, 저작자가 중단을 요청할 때에만 예외적으로 서비스를 중단하는 정책이었다. 결국 저작자의권리보호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처분결정 등 법률적 제재를 회피하고 저작권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 권리보호를 표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분열 책동을 중단하고 정당한 배상을 실시하라
그간 소리바다는 불법을 토대로 사세를 확장하여 왔다. 그들은 음악의 사용에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지 아니하였으며,파일 공유와 교환을 매개하였기에 음악파일의 제작을 위해서도 별도의 비용을 지출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수 백억원의펀딩을 성사시켜 코스닥에 우회등록까지 마쳤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이제는 음악(원)권리자의 회유에 나서고 있다. 저작권 보호의지를 천명하고 과거에 대한 정당한 배상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에 몰려 있는 음반사, 제작자들에게 당근을 제시하며 회유하고 있는것이다. 특정 인맥이 동원되었고, 뒷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돈다.

소리바다의 이러한 행태는 음악업계를 분열시키고 음악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뿐이기에, 우리는 개별 회유정책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아울러 과거의 침해에 대한 배상 기준을 제시하고, 음악업계와 공개적인 협의에 나설 것을촉구한다.

이상과 같은 우리의 문제제기에 대하여 소리바다의 신속한 입장 표명을 기대한다. 또한 우리의 요구사항이 이행되지않을 경우에는 서비스중지 가처분 신청을 시작으로 강력한 민, 형사 소송을 진행할 것임을 천명한다. 아울러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도 이제까지의 방관자적 입장을 버리고 저작권 보호와 음악산업의 발전을 위하여 적극적인 중재와 해결에 나서줄 것을 요청하는 바이다.

2006년 7월 27일

도레미미디어, 만인에미디어, 블루코드테크놀로지, 서울음반, CJ뮤직, 아인스디지탈, 예전미디어, YG엔터테인먼트, 킹핀엔터테인먼트, 소니비엠지뮤직, 워너뮤직코리아, 유니버설뮤직, EMI뮤직코리아

성명서를 보면 당시 서울음반 등의 소위 메이저 음반사들이 소리바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소리바다를 ‘불법사이틀 대표한다’고 표현했고, ETRI의 기술테스트를 통과한 필터링 기술에 대해서도 ‘저작권 보호가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표현으로 묵살했다. 소리바다의 유료화 정책은 실체가 없는 ‘기만적인 선언’이라는 게 이들의 결론이었다.

소리바다도 이 성명서에 대한 대응자료를 신속하게 내놓았다. 당시 소리바다가 내놓았던 자료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소리바다의 기만적 유료화 정책을 규탄한다’에 대하여전세계적으로 P2P에 동시 접속자 수는 평균 1,000만명에 달하며,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인구는 10억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수의 네티즌들이 P2P를 이용하는 이유는 공짜인 것도 있겠지만, 여기서 유통되는 콘텐츠의 다양성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소리바다의 유료화는 사용자들에게는 이런 다양성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권리자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권리행사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첫 시도입니다. P2P 환경을 유지한 상태에서 적절한 가격에 유료화를 해야 기존 이용자들이 해외 무료 P2P로 유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잠재 고객들을 유료 고객들로 전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되면 온라인 음악시장의 파이를 키워 권리자, 네티즌, 온라인사업자 모두가 윈윈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서비스 중인 다수의 유료서비스들도 무료에서 유료로 전환한 후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문제들은 차츰 해결되어 지금의 안정적 시장이 확립되었습니다. 당사의 P2P 유료화 또한 새로운 시도로서 문제점이 전혀 없을 수는 없으며, 일부 돌출되고 있는 문제들도 기존의 업체들이 겪었던 시행착오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사는 이러한 진통이 온라인 음악시장의 발전과 저작권보호를 위한 성장통이라 생각하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안정화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승인되지 않은 음악파일의 교환을 즉각 중단하라’에 대해
이는 P2P와 웹서비스라는 네트워크 기술의 특징을 잘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P2P는 서버가 콘텐츠를 제공하는 웹서비스와는 달리 사용자가 유통을 지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가 공유하고 있는 파일이 어떤 곡인지 알아낸 후에야 그 파일에 대한 권리 관리가 가능해집니다.

P2P상에는 저작권이 보호되어야 할 파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파일도 많습니다. 만일 일부 업계의 주장대로 승인된 곡만 공유가 가능하게 한다면, P2P의 가장 큰 장점인 다양한 무료콘텐츠의 유통조차 막으라는 소리가 됩니다(법원에서도 소리바다 P2P 내에서 30% 이상은 저작권이 없는 파일이라고 인정한 받 있습니다).

만약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리는데 지적재산권자와 계약이 되어 있는 것만 올릴 수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것은 이미 인터넷도 아니고 블로그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저작권이 없는 수많은 파일들을 공유할 수 없는 공간은 이미 P2P로서의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물론 P2P를 애써 유료화한 노력도 물거품이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저작권자가 존재하는 콘텐츠를 무방비 상태로 유통하도록 하자는 건 아닙니다. 블로그에서도 소정의 절차를 거쳐 저작권문제가 발생하는 사진이나 글을 삭제토록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P2P 내에서도 승인되지 않은 음악 파일의 교환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절차가 있습니다. 특히 P2P에서는 서비스 관리자가 개인 PC의 하드디스크에 들어가 관련 음악파일을 삭제할 수는 없으므로 네트워크상에서 유통을 막아야 하는 훨씬 더 어려운 기술적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당사는 필터링 시스템을 적용하기 위해 수많은 테스트를 했고,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여 기술을 상용화했습니다. 또한 필터링시스템 외에도 인력과 비용을 투자해 ‘그린파일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습니다.는 저작권자가 자기 곡에 대한 침해가 있는지 소리바다 P2P네트워크에서 직접 확인했을 경우, 인터넷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필터링 데이터베이스에 해당 파일을 등록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입니다.

이렇게 등록된 파일들은 파일명을 바꾸거나 태그 정보를 바꾼다 해도 같은 파일로 인식되어 공유가 차단됩니다. 몇몇 업체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파일명만 바꾸면 공유가 되는 식의 허술한 방식을 소리바다에서는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사는 저작권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기술개발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시장파괴적인 정액제 요금 정책을 중단하라’에 대해
P2P를 유료화함에 있어서 가장 큰 장벽 중의 하나가 바로 P2P에 대한 네티즌들의 인식입니다. P2P이용자들은 ‘자신들끼리 파일을 주고 받는 건데 왜 돈을 내야 되느냐’고 유료화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거부감을 어느 정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가격이 필수적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P2P는 개인끼리 파일을 생성하고 교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음질’과 ‘내용’을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P2P서비스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기존 음악서비스의 금액체계에 크게 벗어나면 안 된다는 판단입니다. 몇몇 업체들은 소리바다의 정액제 서비스가 시장파괴적으라고 하나, 온라인 음악시장 매출, 특히 벨소리, 통화연결음을 제외한 다운로드 시장의 경우 대부분이 정액제 서비스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한 주장에 불과합니다.

또한 무제한 다운로드 방식이라고는 하나 유료화 후 현재까지 소리바다 가입자들의 평균적인 다운로드 건수를 봤을 때는 가입자들이 합리적인 범위에서 자신이 듣고 싶은 곡을 선별하여 다운로드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 소리바다의 유료 가입자 기반을 바탕으로 계약된 음반사들과 수익 배분에 있어서 음반사들도 충분히 이익을 볼 수 있는 윈-윈 구도가 정착되리라 판단합니다.

당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내년 매출 목표를 500억원이라고 수차례 공표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매출에서 저작권료가 60% 이상 지급되기 때문에 내년에만 연간 300억원 이상이 권리자들에게 배분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는 정액제 서비스이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입니다.

만약 이 매출목표를 곡당 500원 하는 종량제 다운로드 방식으로 달성하려면 연간 1억곡 이상을 팔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는 전세계 온라인음악시장을 80% 이상 장악하고 있는 아이튠즈 또는 미국시장에서나 가능한 수치입니다. 게다가 아이튠즈의 경우 사용자당 평균 한 달에 1곡 정도밖에는 구매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시장규모가 훨씬 작은 국내 시장에 이러한 곡당 판매방식을 적용한다면 높은 매출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당사는 대한민국에서 사업하는 사업자입니다. 만약 곡당 판매방식이 시장에 도움이 된다면 왜 채택하지 않았겠습니까? 국내 온라인음악시장이 황폐화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업자인 당사에 돌아올 텐데 왜 시장파괴적인 정책을 수립하겠습니까?

‘저작권보호를 위한 기술적 보호장치를 보완하라’에 대해
P2P네트워크에서 공유되는 파일들은 콘텐츠 인식코드 같은 것이 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특정 파일이 어떤 곡인지 정확하게 알아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작업들을 해주는 기술이 음악인식기술(audio fingerprinting technology)인데, 이는 지문인식과 흡사한 기술입니다.

우선 음악 원본의 파형을 분석하여 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미리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P2P상에서 공유되고 있는 파일이 어떤 곡인지 대조해볼 수 있는 기본 데이터베이스가 됩니다. 사용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음악파일들로부터 파형지문을 추출하여 이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해보면 공유파일이 어떤 곡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음악원본의 파형을 미리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사가 계약한 음원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방법으로 음원을 공급받아 파형 데이터베이스를 마련하였으나, 계약하지 않은 업체들의 음원은 당사가 제공받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금도 당사는 필터링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 수십명의 인력을 운용하고 있습니다만 P2P에서 유통을 원치 않는 권리자들이 A4용지 수백장 분량의 리스트를 우편으로 보내놓고 알아서 필터링하라는 것보다 데이터베이스화할 수 있는 음원과 메타데이터를 공식적으로 제공해준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필터링 작업이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더욱더 효과적인 저작권 보호를 위해 권리자들께 정중히 요청드리는 것입니다.

소리바다가 사용하고 있는 음악인식기술은 과학기술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개발한 것입니다. ETRI의 적극적인 협조로 여러 테스트를 통해 인식율을 98%까지 달성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결과를 음악저작권 3단체에 보고한 적도 있습니다.

‘저작권 보호 요청절차를 개선하라’에 대해
소리바다가 마련한 저작권 보호 요청절차는 절대적으로 저작권법 조항에 근거한 것입니다. ‘저작권법 제77조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제한 및 제77조의 2 복제/전송의 중단’에 의하면 자신의 권리가 침해됨을 주장한느 자는 그 사실을 소명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소명이 필요한 자료로는 1)자신이 그 저작물의 권리자로 표시된 저작권 등의 등록증 사본 또는 그에 상당하는 자료 또는 2)자신의 성명이나 명칭 또는 예명, 아호, 약칭 등으로서 널리 알려진 것이 표시되어 있는 저작물의 사본 또는 그에 상당하는 자료라고 관련 대통령령에서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작물의 복제/전송의 중단을 요구하고자 하는 때에는 1)그 복제,전송이 저작권 등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진술 2)그 복제, 전송의 중단 요구 대상이 된 저작물의 제호 또는 그에 상당하는 문자나 부호 3)그 복제, 전송의 중단요구 대상이 된 저작물이 소재하는 온라인서비스상의 위치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정보 4)권리주장자의 성명 등 주소, 전화번호, 전자우편 주소 등 연락처 5)권리주장자나 그의 대리인의 서명 또는 날인을 서비스업체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같은 대통령령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을 경우 본인이 권리자가 아닌 경우에도 누구나 아무런 근거 서류조차 없이 자신이 권리자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이며, 저작권법에서 이를 명시한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소리바다가 마련한 저작권보호 요청절차는 권리자들의 권리를 소리바다가 심사, 승인하겠다는 취지가 아니라 최소한의 확인절차인 셈입니다.

‘분열 책동을 중단하고 정당한 배상을 실시하라’에 대해
P2P로 인해 발생한 저작권자들과 서비스업체와의 분쟁은 국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그 햇수도 무려 6년을 넘어섰습니다. 소리바다 역시 그 중심에 서서 여러 번의 법적 분쟁을 겪으며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이 분쟁의 해결방안은 법원이 내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간의 합의 도출이라는 것이 외국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네티즌들과 권리자들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고민한 끝에 수많은 합의와 합의를 거쳐 3개 음악 저작권 단체와 340여 개의 음반제작사들과의 합의도 마치고 유료화 전환을 진행한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당사는 오랜 시간 음반업계와의 대화와 협의를 통하여 유료화를 시행한 것이지 당사의 독단적인 생각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음반업계의 관련 당사자가 수없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사는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합의를 통해 되도록이면 많은 권리자들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고, 아직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몇몇 권리자들과의 협상 의지는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몇몇 권리자들과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 권리자들의 저작물이 침해되지 않게 하기 위한대한의 노력을 할 것이며, 이를 효과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한 최소한의 협조 관계도 지속적으로 만들어갈 것입니다.

2006년 7월 31일

소리바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당시 멜론의 정액제 무제한 다운로드 서비스가 4,500원이었는데, 왜 소리바다는 당시 무제한 스트리밍 월정액 수준이었던 3,000원으로 유료화했을까.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경쟁서비스사업자들의 반발을 충분히 예상했을 텐데 왜 3,000원을 고집했을까. 양대표는 이에 대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기존 사업자의 관점에서 월정액 3,000원은 상당히 도전적으로 보여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선 도저히 그 이상을 책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서비스의 품질’ 때문이었습니다.”

가짜파일을 의도적으로 퍼트렸던 권리자들

소리바다의 대응 문건에도 나와 있듯이 P2P는 개인이 생성한 파일을 공유하기 때문에 그 품질을 보장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가짜파일’, 일명 ‘페이크(fake)파일’이었다. 이 가짜파일들은 2005년부터 일부 권리자들이 P2P에서의 불법 파일 유통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의도적으로 P2P네트워크에 배포했다. 당시 관련 기사의 일부를 소개해본다.

저작권자들이 진품 파일의 불법 공유를 막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저작권자들은 최근 미국의 ‘오버피어’와 한국의 ‘노프리’ 등의 서비스업체에 의뢰해 수천 개의 가짜 음악파일과 동영상 파일을 P2P사이트에 올려놓고 있다. 이는 자료를 불법으로 공유하는 누리꾼을 막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다. P2P서비스에 수 천개의 가짜 음악파일, 영화 파일 등을 올려놓으면 누리꾼들이 진품을 찾기 어려워진다(동아일보, 2005년 1월 28일, 기사제목 : 개정 저작권법 시행 2주… 치열한 신경전/어! 내려받은 노래가 금방 끊어지네).

‘소리바다는 페이크(fake) 바다.’ 최근 무료 MP3 음악파일 공유 사이트 ‘소리바다’에서 최신 가요 파일을 내려 받은 대학생 김모씨(23)는 음악을 듣던 중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멀쩡하게 음악이 흘러나오더니 갑자기 음악이 그치고 ‘불법 MP3 음악을 듣지 마시고 합법적으로 앨범을 구입해 주세요’라는 캠페인성 발언이 나왔기 떼문이다(문화일보, 2005년 1월 31일, 기사제목 : 억! 소리바다에 귀신소리? – “MP3 이용마라” 불법 캠페인 들끓어).

이처럼 소리바다의 서비스 품질을 열악하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권리자들이었다. 특히 음악 서비스업계에서 악명이 높았던 ‘노프리’를 앞장 서서 지원한 기업 중에 하나가 다름 아닌 서울음반이었다. 그들의 의도대로 가짜파일 소동은 연일 언론을 수놓았고, 소리바다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을 키우는 데 크게 한 몫했다.

노프리(www.nofree.co.kr) 사이트 이미지, 지금은 폐쇄됐다.

‘텔미’를 다운 받을 수 없었던 소리바다

그리고 가짜 파일 외에도 서비스 품질을 열악하게 만든 다른 조건이 또 있었다. 그것은 필터링 기술이 적용되면서 계약되지 않은 음원 상당수가 소리바다에서는 다운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시 소리바다의 요금을 멜론 수준으로 올릴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소위 메이저 음악제작사들 다수가 우리와 음원공급 계약을 맺기를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히트곡 중 상당 수가 이들 메이저 음악제작사들로부터 나왔는데, 소리바다에서는 그 음원을 필터링 기술로 차단해야 하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만이 많은 서비스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소리바다의 요금을 두고 문제를 삼는 분들께는 제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소리바다에 음원을 공급해주시면 바로 요금을 올리겠다’고요.”

당시 소리바다와 계약을 거부하고 있던 서울음반과 CJ뮤직(지금의 엠넷미디어) 등은 수백억원 대의 음악펀드를 앞세워 시중에 유통되고 있던 상당수의 음원에 대한 유통권을 확보하고 있었다. 자연히 저작권을 보호하겠다고 선언한 소리바다는 필터링 기술을 이용해 이들 기업의 음원을 차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당대 히트곡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소비자들은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자기 돈을 내고 서비스에 가입했는데 원하는 곡을 다운 받을 수 없다면, 이를 수긍하고 소리바다의 입장을 이해해줄 소비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소리바다가 필터링 문제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사례는 2007년 하반기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던 원더걸스의 ‘텔미’였다. 원더걸스의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는 SK텔레콤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회사였고, 당연히 소리바다와는 음원공급 계약이 이뤄질 수가 없었다. 당시 소리바다를 이용하던 소비자들 상당수는 ‘텔미’를 다운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트렸고, 이를 이유로 탈퇴하는 회원들도 속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양대표는 3,000원을 끝까지 고집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한다. 서비스 품질과 연동해서 가격을 올릴 계획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3,000원에 유료화를 시작한 건 사실입니다만, 당시 소리바다의 서비스 품질만 봐서는 그것도 높은 금액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3,000원을 계속 고집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기왕에 무료로 사용하던 사용자가 느낄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업계를 납득시킬 수 있는 적정선을 찾다보니 3,000원이 된 거죠. 우리는 애초부터 서비스 품질이 나아지면 바로 가격을 올릴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1년 뒤인 2007년에는 4,000원으로 인상했구요.”

제작사들이 소비자가를 문제 삼는 건 엄격한 의미에서 불법

하지만 멜론 4,500원 대 소리바다 3,000원이라는 단순 비교는 꽤나 힘을 발휘했다. 그때 이미 월정액 3,000원으로 계약한 음악제작사가 300곳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바다를 두둔하는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논란에는 사람들이 관가한 중요한 사실이 하나가 있다. 성명서를 보면 13개 ‘음악제작사’들이 소리바다의 유료화를 비난한 것으로 돼 있는데, 그들이 순수한 의미의 음악제작사들이었다면 과연 그렇게까지 비난할 만한 성격이었을까 하는 점이다.

모든 상거래에서 제작사는 유통사와 ‘공급가’를 기초로 계약을 하지, 유통사의 ‘소비자가’를 빌미로 계약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소비자가는 유통사가 책정하는 것인데, 특정 유통사가 타 기업보다 낭비 요소를 줄여 소비자가를 낮춰 공급한다면 그 회사는 소비자의 선택을 더 많이 받게 될 것이고, 소비자 또한 보다 나은 서비스를 공급받게 된다. 그래서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제작사가 유통사의 소비자가를 간섭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공정거래법상에 있는 ‘재판매금지 조항’이다.

따라서 음악제작사가 소리바다의 유료화를 비판하려 한다면 ‘공급가’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게 정상적이다. 예를 들어 ‘멜론은 공급가를 얼마에 했는데, 소리바다는 왜 그것보다 싸게 받으려느냐’고 시비를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권리자들이 멜론과 소리바다에서 받아가는 실제 공급단가는 거의 같거나 소리바다가 오히려 더 많았다. 그래서 음제협을 비롯해 300여 곳의 음악제작사들이 소리바다와 합의를 해준 것이었다.

같은 공급가에 높은 소비자가를 매긴 서비스를 비난하는 게 상식적

반면 소리바다가 소비자가를 멜론보다 현저히 낮게 책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P2P라는 특성 때문에 멜론과 같은 웹서비스 방식과 달리 경비를 절감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많았고, 또 소리바다 스스로가 매출의 60%를 권리자들에게 내놓음으로써 자기 몫을 줄였기 때문이었다.

즉 권리자 입장에선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는 거래였고, 덕분에 가격이 내려가 소비자들이 더 많이 찾는다면, 권리자들의 몫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칭찬을 하면 했지 비난할 거리는 아니었다. 따라서 정상적인 권리자라면 앞서도 언급했듯이 소리바다가 아닌 멜론을 비난했어야 했다. 그리고 서비스사업자들간의 경쟁을 더욱 부추겨 음악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줬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음악시장을 리드하던 일부 제작사들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멜론 등 자기들 회사와 직간접으로 연계된 서비스사업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소리바다의 소비자 가격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우리가 먼저 행동하면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순진한 생각이죠. 돌이켜 보면 반대 입장에 계셨던 분들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그 분들이 볼 때는 소리바다의 요금정책이 굉장히 공격적이라고 느껴졌을 겁니다. 우리가 무료 서비스일 때는 무조건 공격하고 비난만 하면 됐는데, 막상 유료화가 되면 ‘경쟁사’가 되는 거거든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는 거꾸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시장을 파괴할 목적으로 움직인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를 이해해줄 거라구요.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죠.”

1심에서 소리바다가 승리하다

그런데 소리바다에도 희소식이 하나 날아 들었다. 2006년 8월 23일에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소리바다5 음반복제금지 가처분신청 1심 공판’에서 소리바다가 승소한 것이다. 이 소송은 서울음반 등이 제기한 것으로 소리바다와 관련한 ‘마지막 저작권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법원이 소리바다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그동안 권리자와 합의를 위해 노력해왔고, 또 필터링 기술 등을 이용해 저작권보호에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관련 판결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본다.

판결문의 핵심 내용

저작권법 제77조 제2항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저작물 등의 복제, 전송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하여 다른 사람에 의한 저작물 등의 복제, 전송으로 인하여 그 저작권 그 밖에 이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권리가 침해된다는 사실을 알고 당해 복제, 전송을 방지하거나 중단시키고자 하였으나 기술적으로 불가능할 경우에는 그 다른 사람에 의한 저작권 그 밖에 이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권리의 침해에 관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은 면제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볼 때 다음의 사정이 소명된다.

첫째, 소리바다는 P2P서비스를 통해 공유되는 파일의 해시(HASH)값을 설정해 고소인들이 저작인접권을 가지는 음원과 동일할 경우 공유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고, 해시값을 학인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다시 음원의 파형 분석 정보로 동일성 여부를 확인하는 필터링 기술을 채택하여 시행하고 있는데, 이로 인하여 소리바다 서비스에서 목록에 기재된 음원 파일 대부분이 공유될 수 없는 상태로 보인다.

둘째, 소리바다는 이른바 “디지털 워터마크 제도”를 채택하여 필터링 기술에 걸리지 않는 파일에 대해서 추후 유통경로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해 서비스 이용자들이 무단 복제하는 행위를 사실상 제한하고 있다고 보인다. 아울러 저작권자 누구나 유통금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그린파일 제도”를 채택함으로써 필터링 기술로 예방할 수 없는 저작인접권 침해를 방지할 보조적 수단을 두고 있다.

셋째, 위와 같은 예방책은 저작인접권자의 요청을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디지털음악파일을 통제하는 현재까지의 기술 수준에 비추어 위에서 본 기술의 기능을 상회하여 저작인접권의 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 기술적 수단이 제시된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소인들이 위와 같은 소리바다가 시행하고 있는 저작인접권 침해 예방 기술이 사실상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고 단정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아니하고 있는 점을 보태어 보면, 결국 소리바다가 현재 실시하고 있는 P2P서비스는 저작인접권 침해 예방을 위한 기술적 조치를 다한 것으로서 저작권법 제77조 제2항에 의하여 면책되는 경우에 해당할 여지가 적지 아니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고소인들의 가처분 신청은 소명부족으로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한다.

2006년 8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 민사부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법원은 1심에서 소리바다가 그 동안 기울여온 노력을 인정해주고 손을 들어줬다. 소리바다가 현존하는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저작권 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저작권법이 명시한 ‘면책’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한편 가처분 신청을 한 고소인들에 대해서는 ‘소리바다의 기술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고 단정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이를 거꾸로 적용하면, 소리바다가 채택한 필터링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엉터리 기술이란 점이 입증된다면 고소인들이 승소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물론 서울음반 등은 즉각 항소했다. 그리고 그 ‘소명자료’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기 시작했다. 싸움은 이제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다음은 ‘3차 분쟁 – 저작권보호센터의 이상한 모니터 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위 포스트는 소리바다의 10년을 되돌아보는 의미에서 소리바다 대표이사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소리바다의 탄생부터 대중화, 분쟁 그리고 현재 / 음악관련 중요한 이슈까지 광범위하게 다뤄질 예정이며 원작자의 동의하에 Talk Soribada에도 함께 개재됩니다. 원문은 괴나리봇짐님의 블로그 http://timshel.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리바다3′, 합의를 위한 모험과 좌절

1월 20th, 2010

[소리바다이야기⑦] 2차 분쟁-유료 시장의 등장과 변질된 갈등

‘소리바다1′은 2000년 8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무려 7년 4개월의 시간에 걸쳐 치열하고도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였지만, ‘소리바다2′는 단 한 번도 소송에 휘말린 적이 없었다. 이는 법정 공방에서 항상 ‘이용자가 음악파일을 불법 유통할 때 소리바다 관리자가 이를 도왔거나 조장했는지에 관한 것’이 문제였는데, 그 판단 기준이 바로 ‘서버의 존재 여부’였고, ‘소리바다2′에서는 그런 서버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앞서도 밝혔듯이 서버를 없애고, 그 역할을 특정 대역의 슈퍼피어에게 맡긴 ‘소리바다2′ 방식은 법정 공방을 회피하기 위한 기술적인 대안은 될 수 있어도 본질적인 처방은 아니었다. 특히 양정환 대표는 이 방식을 스스로 ‘꼼수’라고 표현할 정도로 임시방편으로 생각했다. 그는 권리자들의 원만한 합의를 바탕으로 P2P를 통한 합법적인 음악 유통서비스를 만들고 싶어했지, 무책임하게 소프트웨어만 던져놓고 음악권리자들을 골탕 먹이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소리바다2′에 대한 소송거리를 잃어버린 음반사들이 소리바다 이용자를 겨냥하기 시작한 것도 문제였다. 앞서도 소개했지만 ‘소리바다1′에 대한 형사고발 사건에서 서울지방법원은 ‘정범’을 특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종범’인 소리바다의 죄를 물을 수 없다 하여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는데, 그 이후 음반산업협회는 본격적인 정범 사냥에 들어갔다. 2003년 12월에는 50명을, 2004년 8월에는 150명을 고발했는데, 소리바다 입장에서는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소리바다2′는 법적으로 문제 삼을 소지가 거의 없었습니다만,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타깃이 되는 현실을 모른 체만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빌미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권리자들과 만나 어떻게 해서든 풀어야 했습니다.”

소리바다와 권리자간 합의의 틀이 마련되다
그래서 그는 ‘소리바다2′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고나서도 권리자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권리자와의 의미 있는 만남이 성사된다. 그 주인공은 바로 오픈월드뮤직(지금의 오픈월드엔터테인먼트)의 장석우 대표였다.


장석우 오픈월드뮤직 대표(출처: 아이뉴스24)

오픈월드뮤직은 2000년 9월에 설립됐고, 장나라 성시경, 신화 등의 도쿄 콘서트와 아시아 콘서트를 주관하며 성장한 회사로 지금은 가수 전진과 탤런트 고주원 등을 보유하고 있다. 소리바다와는 ‘소리바다3′이 시작된 뒤 한달 뒤인 2004년 8월에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2002년 말과 2003년 초에 걸쳐 있던 겨울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열린 모 콘서트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장석우 대표를 처음 만나게 됐죠. 거기서 인연이 시작돼 서울에 와서도 자주 만났고, 그분을 중심으로 많은 권리자들과도 대화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양대표와 장대표 사이의 대화가 쉽게 풀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장대표는 다른 권리자와 달리 처음부터 소리바다에 우호적이었던 걸까?

“장대표도 당시 음반회사들 중에서 불법서비스를 단속하기 위해 앞장선 소위 전위대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를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더군요. 그런데 막상 만나서 대화해보니 ‘다른 회사들과는 달리 돈벌이를 위해 인터넷 기술을 악용하는 것 같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화를 이어가면서 우리가 합리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믿어줬습니다.”

장대표와의 만남을 계기로 소리바다는 본격적인 유료화 모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6개월 여에 걸친 토론과 합의를 거쳐 2004년 7월에 내놓은 것이 바로 ‘소리바다3′이다.

그러나 이 모델에는 큰 함정이 있었다. 유료화를 위해서는 ‘실명인증’이 필수적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회원을 관리하기 위한 ‘서버’를 하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서버가 존재하느냐 마느냐는 이용자들의 저작권 위반 행위를 방조 또는 도와줬느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였다.

“우리가 서버를 사용하게 되는 순간 분명히 타깃이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리바다3′이 단순히 우리의 머리에서만 나온 게 아니라 권리자들과의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거친 모델이었고, 또 실제로 여러 음반사들과도 계약이 성사돼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소송을 당하더라도 ‘소리바다1′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를 했습니다.”

권리자들과 함께 만들어낸 유료서비스 모델 ‘소리바다3′
그렇다면 ‘소리바다3′에서 만들어낸 유료서비스 모델은 어떤 형태였을까. 양대표는 이 모델을 ‘부분유료화’라고 표현한다. 기존의 P2P는 그대로 두되 ‘MP3#’이라는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를 별도로 만들어 P2P의 사용권한과 연계하는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소리바다3′ 리뉴얼 공지

“‘소리바다3′에 적용된 유료서비스 모델은 계약된 음원을 개별적으로 판매하되, 한 곡을 다운로드 받으면 1주일 동안 P2P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세계 어디에도 없던 방식인데요, 우리와 권리자들이 정말 머리 맞대고 만들어낸 소중한 합의안이었습니다.”

이 모델은 제법 효과를 발휘했다. 2004년 12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는 월 100만곡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음악시장에서 단번에 주목을 받았다. 이 기준으로 보면 매달 5억원의 매출이 발생하고, 그 중에 3억원 정도가 권리자에게 돌아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처럼 실질적인 보상이 권리자들에게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소리바다와 권리자들간의 유대도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소리바다3′의 결정적인 문제는 그 합의에 참여한 권리자가 ‘일부’였다는 점이었다. 합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권리자들은 여전히 소리바다를 ‘불법을 조장하는 서비스’로 규정하고 다시금 ‘음반복제금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한다. 이때 주동세력은 ‘소리바다1′ 때의 한국음반산업협회가 아니라 한국음원제작자협회(당시 협회장 서희덕)였고, 때는 2004년 11월 4일이었다.

온라인음악시장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음제협
여기서 한국음원제작자협회(이하 음제협)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음제협은 2001년 11월에 설립됐고, 같은 해 12월에 문화관광부로부터 ‘방송보상금 징수단체’로 지정을 받았으며, 2003년 3월에는 저작권법상의 ‘저작권신탁관리단체’로 지정을 받아 명실상부한 법적 지위를 획득했다. 이때부터 음제협은 온라인 음악시장의 유료화를 앞당긴다는 명분으로 본격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또 음반제작자를 대표한다는 명분으로 각종 소송에 앞장서기도 했다.


당시 음제협 회장으로 있던 서희덕씨(출처: 음제협)

그러나 업계에서 이 단체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낮았다. 음제협에 상당수의 제작자들이 참여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소위 말하는 메이저급 제작자들은 거의 빠져 있었고, 또 서로가 상대방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음악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특히 징수된 저작권료가 투명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원성이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대행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협의로 협회장 등이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음반 제작자를 대표한다는 법적인 명분은 음제협에 있었다. 음제협보다 훨씬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음반산업협회가 있긴 했지만, 그 협회는 내부 문제로 거의 식물단체나 다름이 없었다. 따라서 법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음제협이 업계의 신망과는 관계 없이 활발한 소송전을 펼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소리바다와 소통하던 권리자 그룹도 차츰 뭉치기 시작했다. 2005년 4월에 발족한 ‘젊은 제작자 연대’(이하 젊제연)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 여기에는 테이, 버즈, 신화, 장나라 등을 보유한 25개의 기획사들이 참여했고, 초대 좌장은 소리바다와 권리자간의 다리를 처음 이어준 오픈월드뮤직의 장석우 대표가 맡았다. 이 단체는 당시 소리바다 관련 소송을 주도하던 음제협과 대립각을 세우며 소리바다의 든든한 원군 역할을 했다.

음제협의 소송 폭탄
법원의 판결이 있기 직전 소리바다는 젊제연과 함께 사상 최초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5년 8월 1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 간담회에서 양대표는 ‘소리바다와 음악업계와의 상생’을 호소했다. 당시 기사의 일부분을 인용해보겠다.

한국음원제작자협회 등 음악업계와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는 파일공유 사이트 소리바다는 1일 오전 11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소리바다 양정환 대표와 장석우 젊은 제작자 연대 상임고문이 참여한 이날 간담회에서 소리바다는 ‘소리바다와 음악업계의 상생’을 주장했다.

양대표는 “이제는 기술의 발전을 인정하고 권리자에게 이익을 줄 방안을 논의할 때이지 이런 소모적인 법적 논쟁은 아무런 득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유료서비스를 시작한지 6~7개월이 지났는데, 처음에는 적대적이던 권리자들도 우호적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음제협을 비롯한 일부만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상임고문은 “아직 판결이 나오지도 않은 P2P를 가지고 왜 불법이라고 하는가. 소리바다와 음악업계가 공생관계로 갈 수 있는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양대표는 이날 간담회를 통해 유료전환의 성과를 설명하며 지난 달 미국 대법원이 P2P서비스에 대해 불법 판결을 내린 데 대해 “판결문에서 명시한 침해행위를 적극적으로 조장할 의도가 없기 때문에 소리바다가 (미국 판결 때문에) 불리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05년 8월 1일 기자회견 당시(출처 : 마이데일리)

그러나 법원 입장에서는 정부가 지정한 저작권신탁관리단체인 ‘음제협’과 임의 단체일 뿐인 ‘젊제연’의 목소리가 같은 비중으로 들릴 리가 없었다. 결국 음제협이 낸 가처분 신청은 이듬해인 2005년 8월 29일에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졌고, 뒤이은 이의신청과 항고에도 불구하고 2005년 11월 7일에 ‘소리바다3′도 서비스가 중단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소리바다3′은 2004년 7월에 시작돼 2005년 11월까지 16개월간 지속됐다.

당시 판결내용은 ‘소리바다3이 실명인증 기반의 로그인과 포인트 제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용자를 콘트롤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 보이고, 따라서 사용자들의 불법복제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법원의 설명과 달리 우리가 로그인 절차를 넣고 포인트 제도를 도입한 것은 P2P 사용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용자들에게서 과금을 하기 위해서는 실명 인증을 통해 로그인을 하도록 해야 했고, 포인트 제도는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마케팅 툴로 도입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이런 행위를 P2P서비스를 콘트롤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발목을 잡은 꼴이 된 것이죠.”

이후 음제협은 전방위 압박을 해왔다.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자 마자 ‘도메인 가압류 신청’, ‘주식가압류 신청’, ‘채권 가압류 신청’ 등 이른바 소송폭탄이라고 할 정도로 실현 가능한 법적 수단을 총동원했고, 또 법원은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소리바다는 가처분 결정이 난지 4개월이 지난 11월에 가서야 서비스가 중단된다. 이런 소송 폭탄에도 불구하고 소리바다가 서비스를 지속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소리바다가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이렇게 서비스를 유지한 것은 소리바다와 계약된 음반사가 상당수 존재했고, 그들에게 계속해서 돈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계약을 한 마당에 서비스를 중단하는 것은 저희로서도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던 거죠. 차라리 벌금을 물더라도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데까지 유지해보자는 게 그때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음제협은 이마저도 용납할 수 없다며 법원에 마지막으로 ‘간접강제’ 조치를 신청했다. 간접강제란 서비스를 중단시키기 위해 강제적인 방식을 동원한다는 의미인데, 이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날부터 매일 1,000만원의 벌금을 물리도록 한 것이었다. 이 금액은 당시 소리바다가 하루에 올릴 수 있는 매출과 거의 맞먹는 큰 금액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청이 인용된 날부터 서비스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소리바다3′ 음반복제금지 가처분신청 관련 소송일지>
• 2004. 11.  4.   한국음원제작자협회 가처분 신청
• 2005.  8. 16.   가처분 신청 인용 결정(서울중앙지법)
• 2005.  9.  8.   가처분 이의 신청
• 2005.  9. 27.   도메인  가압류 신청 인용 결정(서울중앙지법)
• 2005. 10. 25.  주식 가압류 신청 인용 결정(서울중앙지법)
• 2005. 10. 26.  가처분 이의 신청 기각(서울중앙지법)
• 2005. 10. 28.  채권 가압류 신청 인용 결정(서울중앙지법)
• 2005. 10. 31.  간접강제 신청 인용(서울중앙지법)
• 2005. 11.  7.  ’소리바다3′ 서비스 중지

법원을 믿었지만, ‘소리바다3′도 결국 폐쇄
앞서도 언급했지만, 양대표는 ‘소리바다3′에 대해 상당히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일부였지만 권리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합의에 성공한 유료서비스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였다. 일부 권리자와의 합의는 나머지 권리자와의 합의 가능성도 충분히 열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타깃은 될 수 있을지언정 법원의 판단은 ‘소리바다1′과는 다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결과는 ‘소리바다1′과 같은 패소와 서비스 중지였다.


‘소리바다3′ 서비스 중지 공지문

“그때 우리는 법원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소리바다를 만든 사람으로서 음반업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조화로운 해결책을 찾으려고 정말 애를 썼기 때문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합법적이면서, 권리자에게 충분히 이득이 돌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내려고 정말 별의 별 아이디어를 다 짜내 보았습니다. 우리는 정말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습니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을까. 양대표는 패소 판결 소식에 격앙됐다. 심지어는 소리바다를 ‘아무나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완전 오픈소스’로 만들어 배포하겠다는 아나키스트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면 법원이 문제를 푸는 쪽으로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순진한 생각이었죠. 그러나 그때는 정말 법원의 취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권리자와 합의한 모델까지 만들었는데 완전히 중지시키라뇨. 정말 악도 생기고,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법원이 시키는 대로 할 수 있다. ‘소리바다2′처럼 서버 없애고 수퍼피어 활용하면 트집 잡을 게 없어진다. 그리고 아예 오픈소스로 가서 아무나 다 쓰게 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말한 거였습니다.”

그러나 양대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우리가 노력해서 ‘소리바다3′을 내놓은 이유는 합리적인 유료화 모델을 만들자는 것이지 모두 파괴해서 너 죽고 나 죽자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마음을 추스르고 합의를 위해 다시 뛰었습니다. 법률가가 보는 P2P와 엔지니어닌 제가 보는 P2P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만, 저는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양대표의 말대로 그만큼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왜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소리바다 측의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온라인 음악시장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해외에서 돌발 변수가 발생한 것일까? 분명히 어떤 권리자는 합의해줬는데, 왜 다른 권리자들은 협상을 거부했을까?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음악시장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간단하게나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국내 시장의 변화를 살펴보자.

문화부의 ‘유료화 가이드라인’이 미친 영향
당시 온라인음악시장의 분위기를 단번에 바꾼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2003년 3월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음악서비스의 유료화 가이드라인’이었다. 이 가이드라인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경우 개인당 월정액 2,000원, 다운로드는 곡당 신곡 600원, 구곡 300원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수익의 분배는 제작자에게 25%가 돌아가는 것으로 했는데 스트리밍의 경우에는 500원, 다운로드일 때는 신곡 150원과 구곡 80원이 돌아간다는 계산이었다.

문화관광부는 이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당시 음악시장에서 정상적으로 징수되면 1년에 860억원이 걷힐 것으로 추산했고, 이로써 줄어든 CD판매량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당시 여론은 이런 계산법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무료에서 유료로 전환됐을 때 이용자수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전망이 없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졸속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시장개입은 그 자체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왔다. 그것은 실제로 예상한 만큼 수익이 걷혔나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기업들이, 특히 음악제작사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근거 논리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일단 2003년 7월을 기점으로 스트리밍 중심의 음악사이트들이 유료화됐다. 맥스MP3, 뮤즈캐스트, 푸키 등이 월정액 3,000원으로 서비스를 전환했다. 당시 최대 스트리밍사이트였던 벅스는 유료화 전환을 미루다가 1년 뒤인 2004년 7월에 같은 가격체계 유료화됐다.

소리바다가 합의가 아닌 ‘축출’ 대상이 된 배경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대형 음반사들은 본격적으로 온라인음악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자회사 판당고코리아를 통해 스트리밍 사이트인 아이라이크팝(ilikepop.com)을 오픈했고, ‘예당엔터테인먼트’도 클릭박스(clickbox.co.kr)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서울음반’도 자회사인 위즈맥스를 통해 위즈캣(www.wizcat.co.kr)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밖에도 ‘튜브’와 ‘도레미레코드’도 서비스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IT기업들도 가세했는데, 2005년 들어서는 네오위즈가 주크온을(jukeon.co.kr), 야후코리아가 비트박스(music.yahoo.co.kr), MP3플레이어 회사였던 레인콤이 펀케익닷컴(funcake.com) 등을 개설했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뒤 2003년에서 2004년 사이는 온라인음악시장의 춘추전국시대였다고 할 만하다.

이처럼 너도나도 온라인 음악시장에 뛰어들면서 ‘권리자 대 서비스사업자’의 구도는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소리바다에 대한 음반사의 인식도 과거에는 ‘저쪽 판에서 음반사를 괴롭히는 사람’이었다면, 이 즈음에는 ‘이쪽 판에서 우리 파이를 좀 먹는 경쟁자’로 바뀌었다. 결국 합의의 대상이기보다는 ‘척결의 대상’이 돼버린 것이다.

음제협이 소리바다와의 합의보다는 분쟁을 고집한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았다. 음제협은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신탁관리단체라는 법적 지위는 갖고 있었지만, 당시 음악시장에서는 ‘마이너 집단’에 불과했다. 실제로 온오프라인 음악시장에서 유통되는 음원 중에 음제협 소속사가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 많이 잡아도 30%를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SM엔터테인먼트, 예당엔터테인먼트, 도레미레코드 같은 소위 대형 메이저 음반사들은 음제협에 소속되기를 거부했고, 또 젊제연 같이 중소 규모이지만 히트곡을 다수 보유한 집단은 소리바다와 적극적인 유대 관계를 구축하면서 음제협과 각을 세웠다. 게다가 음제협은 소리바다와 합의를 한다 해도 챙길 수 있는 실익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온라인 음악시장에서의 매출은 주로 히트곡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데, 음제협이 관리하는 음원에는 소위 히트곡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음제협은 확고한 법적인 지위와는 어울리지 않게 현실 시장에서는 대형 메이저 음반사와 패기 넘치는 젊제연 사이에 끼어 있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이런 위축된 지위를 돌파하고, 스스로의 존재감을 시장에 확인시키며, 또 소송에서 이길 경우 거액의 합의금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소송’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 우리가 제작자들에게 제시한 모델에서 음제협이 낄 자리가 사실 없었습니다. 계약을 한다손치더라도 실제로 팔릴 상품이 없었으니까요. 당시에 음제협은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소리바다 지분의 30% 또는 과거 보상금 300억원이라는 터무니 없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이 조건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당시 음제협은 합리적인 수준의 합의가 아니라, 소송을 통해 ‘한 몫’ 챙기려는 목적이 더 강했습니다. 이른바 신탁단체가 일개 서비스사업자에게 요구할 만한 조건은 아니지 않습니까?”

미국 연방대법원의 그록스터 판결이 결정타를 날리다.
한편 국내 여론을 반(反)소리바다로 급격하게 치우치게 만든 사건 하나가 미국에서 발생했다. 2005년 6월 27일 미국연방대법원은 2년 전인 2003년에 미 연방법원이 내렸던 그록스터의 무죄 판결을 뒤집고 “그록스터 등이 P2P 이용자들의 저작권 침해 행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 소식은 재빠르게 국내 언론을 통해 소개됐고, P2P에 대한 마지막 단죄가 내려지고, 돌이킬 수 없는 낙인이 찍힌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때 미국연방대법원의 판결 소식은 그야말로 핵폭탄이었습니다. 그 판결 이후 소리바다는 그 어떤 재판에서도 이기지를 못했습니다. 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났던 형사 사건도 대법원에서 뒤집혔는데, 이때도 미국의 사례가 크게 참고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 알려진 것과 달리 당시 미국의 판결은 매우 제한적인 내용이었다. 당시 판결문 중 그록스터 등의 책임을 묻는 부분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기록에 따르면 피고가 무료 소프트웨어를 배포할 당시 이용자들이 저작권이 보호되는 파일(불법파일)을 다운 받는 데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도록 하는 목적을 분명히 표명했다는 증거가 충분하다.

악명 높은 파일공유 서비스인 냅스터가 저작권 침해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저작권자들에게 고소 당한 이후에 피고는 ‘자신들이 냅스터의 대안’이라고 홍보하며 시장에 내놓았다. 피고는 이용자로부터 수입을 얻지 않지만, 대신 모여든 이용자를 기반으로 광고를 통해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피고는 저작권이 보호되는 파일들을 이용자가 다운로드 받지 못하게 필터링을 했다거나 혹은 이들의 공유를 저지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다시 말해 그록스터 등이 유죄 판결을 받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냅스터가 폐쇄될 때 냅스터 이용자들을 상대로 자기들이 대안이라고 홍보했기 때문’이었다. 즉 불법 판결을 받은 서비스 이용자를 상대로 (저작권이 보호되는) 불법 파일을 유통할 수 있다고 홍보했기 때문에 악의적이라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당시 판결문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비겁한 판결’이라는 여론이 많았죠. 저도 우리와 관련이 있는 판결이라 상당히 긴 판결문을 꼼꼼하게 읽어봤습니다만, P2P 자체가 불법이라고 표현한 구절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P2P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자체는 합법이라는 표현이 나오죠. 다만 그 프로그램을 악의를 가지고 만들었느냐, 아니냐의 문제였는데, 법원이 ‘냅스터 이용자들을 상대로 한 홍보활동’을 이유로 악의적이었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례를 소리바다에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지 않았을까?

“판결문을 꼼꼼히 읽어보고 저는 오히려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소리바다에는 그록스터와 같은 ‘악의성’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국내 여론은 판결문의 정확한 내용은 깡그리 무시하고 ‘미국연방법원이 P2P에 대해 불법 판결을 내렸다’는 껍데기만 전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살까지 붙여서요.”

실제로 국내에서는 이 판결이 마치 ‘P2P 자체가 불법으로 판명났다’는 뉘앙스로 전해졌다. 심지어는 ‘소비자가 VCR을 불법 복제하는 데 사용하더라도 VCR 제조사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베타맥스 사례’가 뒤집어졌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그러나 그런 국내 언론의 과잉반응은 사후에 호들갑으로 드러났다. 미국에서 ‘베타맥스 사례’는 여전히 유효하고, 저작권을 의도적으로 침해하겠다는 분명한 ‘악의’가 입증되지 않는다면 P2P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자체는 여전히 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여론재판으로 흘러버렸다. ‘P2P는 불법’이라는 표현이 입길에 오르면서 더 이상의 토론도, 더 이상의 합의도 불필요한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음제협과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처럼 대내외 환경이 급변하면서 소리바다가 ‘소리바다3′을 통해 음반업계에 야심차게 던졌던 화합의 카드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 충격은 소리바다에겐 매우 치명적이었다. ‘소리바다1′이 중지되고 나서 ‘소리바다2′가 등장하는 데는 불과 24일이면 충분했지만, ‘소리바다3′이 중단되고 나서 ‘소리바다5′가 등장하기까지는 무려 5개월 가까이가 걸렸기 때문이다(‘소리바다4′는 ‘4′를 혐오하는 정서 때문에 건너 뛰었다고 한다).

“그때는 너무 속상하고 서운해서 오픈소스로 배포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 애쓰고 노력했던 것들이 한편으로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우리가 꿈꾸던 합리적인 모델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힘겹기는 했지만 음제협과 합의를 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애초에 음제협이 소리바다에게 요구했던 합의조건은 300억원의 보상금이거나 소리바다 지분의 30%였다. 그러나 2006년 2월에 최종 합의한 내용은 보상금 70억원에 저작권보호 캠페인 광고료 10억원, 불법 P2P업체 단속 기금 5억원 등 총 85억원이었다.

음제협이 제시했던 금액에 비하면 3분의 1이 채 안 되는 금액이지만, 실제로 법원에서 소리바다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벌금이 2,000만원이 채 안 나온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액수였던 게 사실이다. 소리바다는 이 거액의 보상금을 한국기술투자와 교보증권 등으로부터 투자받은 금액으로 충당했다.


2006년 2월 27일 소리바다와 음제협의 조인식(출처 : 연합뉴스)

“지금 상각해도 너무 말이 안 되는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우리가 코너에 몰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송에 지고 서비스가 중단된 이후 4~5개월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분초를 다투는 게 인터넷서비스인데, 무려 5개월 가까이 중단된다는 건 거의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음제협과 협상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돈을 안 쓸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로써 음제협과 소리바다는 2006년 2월 27일 서울 중구의 프레스센터에서 ‘뉴 패러다임을 통한 우리 음악 세계화 협력 조인식’을 열고 손을 잡았다. 소리바다는 이 합의를 바탕으로 2006년 3월 1일에 ‘보호음원의 필터링시스템’을 적용한 ‘소리바다5′ 베타서비스를 시작했고, 2006년 7월 10일에 월정액 3,000원으로 전면 유료화 서비스를 채택한 ‘소리바다5′를 오픈했다.

그러나 이 합의가 끝이 아니었다. 앞서 여러번 언급한 대로 음제협이 그 이름과 달리 음반업계를 대표할 만한 지위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음제협에 참여하지 않았던 대형 음반사와 온라인 음악서비스에 뒤늦게 뛰어든 이동통신사들이 또 다시 소리바다를 노리고 있었다. 소리바다이 법정 분쟁은 이제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다음은 ’3차 분쟁 – 이동통신사가 싸움에 뛰어들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위 포스트는 소리바다의 10년을 되돌아보는 의미에서 소리바다 대표이사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소리바다의 탄생부터 대중화, 분쟁 그리고 현재 / 음악관련 중요한 이슈까지 광범위하게 다뤄질 예정이며 원작자의 동의하에 Talk Soribada에도 함께 개재됩니다. 원문은 괴나리봇짐님의 블로그 http://timshel.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리바다의 대안은 처음부터 유료화였다.

1월 11th, 2010

[소리바다이야기⑥] 1차 분쟁-권리자들과의 본격적인 충돌

소리바다와 관련된 여론동향은 대체로 미국의 움직임을 추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권리자들과의 본격적인 충돌이 시작된 2000년 8월께도 그랬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소리바다에 대한 음악권리자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은 냅스터가 미국에서 최초로 서비스 폐쇄 판결을 받은 2000년 7월말을 기점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0년 7월 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은 냅스터 이용자가 급속히 늘어나서 음반산업이 큰 피해를 볼 것이기 때문에 폐쇄할 수밖에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냅스터와 관련한 여러 재판에서 처음으로 냅스터의 폐쇄를 명령한 판결이었다.

미국상황만 바라보던 국내 여론
물론 이 판결 이후에 냅스터가 곧바로 폐쇄된 건 아니고, 여러 차례 법정논쟁을 벌이다가 이듬해인 2001년 3월 5일 제9차 순회법원에서 결정적으로 패소해 비로소 그 해 7월에 문을 닫게 된다. 1999년 6월에 문을 연지 25개월만이었다(이후 냅스터는 메이저 음반사 중 하나였던 BMG에 매각되어 기존의 P2P와는 전혀 다른, 이름만 냅스터라고 쓰는 유료 음악서비스로 탈바꿈한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국내 음악권리자들을 움직이게 만든 결정적인 방아쇠가 냅스터에 대한 2001년의 ‘최종판결’이 아닌 2000년 7월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에서 내려진 ‘최초판결’이었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과 저작권 관계자들은 냅스터를 둘러싼 논쟁을 진득하게 지켜보기보다는 얼른 써먹기에 바빴다고 해야 할까. 냅스터 관련 최초 판결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마자 당시 한국음반산업협회 소속사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소송 준비에 들어갔고, 8월경에 법원에 소장을 제출한다. 7월말에 날라든 냅스터의 폐쇄 판결 소식은 어쩌면 국내 음악 권리자들에게는 긴 가뭄 뒤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금은 우습게도 소리바다의 양정환 대표가 권리자들이 제기한 소송을 알게 된 건 이듬해인 2001년 초였다.

“그때 우리는 주민등록이 말소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장이 우리가 있는 곳을 찾지 못하고 4~5개월 동안을 엉뚱한 주소에서 맴돌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듬해 초에 소장을 받아봤는데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P2P를 시작할 때 이미 각오했던 부분이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덤덤했습니다.”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소리바다
이렇게 소장으로 시작된 2001년은 1년 내내 격렬한 논쟁을 점철됐다. 논쟁의 장소도 다양했고, 또 많았다. 법원뿐만 아니라 각종 세미나와 콘퍼런스 등 음악 관련 종사자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김 없이 소리바다가 이슈의 핵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양대표도 이런 논쟁과 토론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01년에는 정말 많은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주관한 토론회가 특히 많았는데, 거의 빠지지 않고 나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토론회 분위기는 그리 호의적이지도, 부드럽지도 않았다. 그때 이미 소리바다는 음악업계에서 공적(共敵)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토론 중에 고성과 삿대질이 심심찮게 오가기도 했다(이런 장면들은 필자가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대표는 거의 모든 토론회에 빠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소리바다가 인기를 끌면서 우리 형제는 일반 월급쟁이들보다는 많이 벌었고, 또 거기에 만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소송에 부닥치고 보니 음반업계 분들을 부득이 하게 만나야 했고, 또 그분들을 설득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죠.”

음반업계를 설득할 수 있는 그림이라면, 그것은 무엇일까?

“저도 이번 인터뷰 때문에 과거 자료를 좀 뒤져봤는데, 2001년 한 세미나에서 제가 발표했던 PT자료에서 이미 ‘유료화 모델’을 제시하고 있더군요. 물론 개인적인 입장에서만 본다면 소리바다를 계속해서 무료서비스로 가져가는 게 나쁠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음반업계가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했고, 우리 입장에선 어떤 형태로든 해결책을 찾아야 했고, 또 찾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2002년 8월 1일에 열렸던 의 주제는 ‘소리바다 금지, 정당한가’였다.
이날 토론자로 박진영(가수), 강헌(음악평론가), 이은우(변호사), 오병일(진보네트워크
사무국장), 임성우(변호사), 곽동수(한국사이버대 정보통신학 교수) 등 6명이 참석했다.

소리바다의 대안은 처음부터 유료화였다
그렇다면 그 당시 유료화 모델은 어떤 그림이었을까?

“그때만 해도 개별 디지털콘텐츠를 인식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객관적인 데이터에 입각한 정산은 불가능했죠. 하지만 그때도 방송보상금 제도는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생각했던 유료화 모델은 이용자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의 요금에 소리바다를 완전히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해주고, 권리자들에게는 기존에 방송보상금을 분배하는 방식을 원용해서 수익금을 분배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방송보상금’이란 방송국이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에 음악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대가로 음악권리자들에게 지불하는 일종의 보상금으로, 저작권신탁단체가 일괄 징수해 방송된 분량에 따라 개별 권리자들에게 분배하는 돈을 가리킨다.

이는 일종의 ‘자발적인 포괄적 라이선스(Voluntary Collective Licensing)’로 권리자가 서비스사업자에게 일정한 조건만 맞으면 자유롭게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이다. 방송보상금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노래방의 저작권사용료도 이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방송 외에도 나이트클럽, 호텔, 헬스클럽 등의 공공장소에서도 이 방식을 이용해 저작권료를 징수하고 있다.

“법리적으로 맞고 안 맞고를 떠나 기본적으로 소리바다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런데 권리자들은 이들을 도둑놈이라고 비난했고, 우리는 도둑질을 도와주는 사람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합리적 방법은 유료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합리적인 선을 잘 찾아낸다면, 음반업자는 물론 소리바다 이용자들도 만족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양대표는 권리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각종 토론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양자간의 접점은 생각만큼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결국 소송은 소송대로 법원에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소리바다를 상대로 진행된 소송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음반복제금지 가처분 신청’이고, 둘째는 ‘손해배상 소송’, 그리고 셋째는 ‘저작권법 위반 형사고발’이었다. 앞의 두 개는 민사 소송이다.

이번 회차에서는 먼저 소리바다의 최초 버전인 ‘소리바다1′을 둘러싸고 진행됐던 소송부터 살펴보겠다.

음반사가 주도한 음반복제금지 가처분 신청
세 가지 종류의 소송 중에서 전체 소송을 이끌어간 것은 가처분 신청 건이었다. 가처분신청의 결과가 나오면, 거기에 따라 다른 재판도 영향을 받는 식이었다. 최초의 가처분신청은 한국음반산업협회 소속사들이 중심이 됐다. 당시 협회장은 아세아레코드 대표를 맡고 있던 박경춘씨였고, 그의 지휘 아래 모두 16개 음반사가 고소인으로 참여했다. 그때 참여했던 음반사들은 아래와 같다.

신촌뮤직(대표 심문섭), 레벌루션 넘버나인(김경남), 아시아미디어(최향숙), 아세아레코드(박경춘), EMI뮤직코리아(김영인), 마이더스ENT(신영환), YBM서울음반(이의종), 예전미디어(방극균), 월드뮤직엔터테인먼트(최규용), 유니버셜뮤직(이찬희), 워너뮤직코리아(심데이비드용), 도레미미디어(박남성), 우퍼엔터테인먼트(김창환), 크림엔터테인먼트(조하영), 신나라뮤직(정문교), 한국BMG뮤직(김종률)

2000년 8월께 시작된 소송은 만 2년을 거의 다 채운 2002년 7월 9일에야 판결이 났다. 판결내용은 소리바다가 서비스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데이터센터의 서버 3대를 중지하라는 것이었다. 이 서버는 소리바다를 이용하는 회원들을 이어주고 관리하기 위한 일종의 커넥팅 서버로 냅스터의 검색서버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냅스터의 서버가 곡의 목록을 관리했다면, 소리바다의 서버는 회원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사실 냅스터 관련 최종 판결이 2001년 3월에 났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바다 관련 판결이 1년 4개월을 더 끈 것도 냅스터 판례를 소리바다에는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002년 10월 4일 정보통신부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온 양정환 대표와 박경춘 음반산업협회장
당시 두 사람은 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했다(출처 : 중앙일보 염태정 기자).

이 판결이 가져온 후폭풍은 정말 대단했다. 인터넷은 판결을 비난하는 성토장으로 바뀌었고, 주요 언론사들도 비중 있게 다뤘다. 많은 대학들도 입시문제로 소리바다를 다뤘다. 그때 언론사의 논조는 대체로 ‘윈윈 해법을 찾자’는 것이었다. 소리바다를 통한 저작권법 위반 사례가 인정되기는 하지만, 소리바다를 통해 만개한 인터넷 문화의 순기능까지 죽일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게 대체적인 여론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시위를 떠난 화살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소리바다는 2002년 7월 31일 오후에 처음으로 문을 닫았다.

그때 양대표의 심정은 어땠을까?

“씁슬하기는 했지만,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판결 결과문을 받아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소리바다를 살릴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원들을 관리하는 서버가 문제로 지목됐으니, 그것만 없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럼 서버가 없는 P2P서비스를 만들면 되겠네’하고 결론을 내린 거죠. 그리고 그때 소리바다를 이용하던 많은 분들을 실망시킬 수도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법원의 판단에서 자유로운 소리바다를 내놓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소리바다가 문을 닫은지 정확하게 24일이 지난 2002년 8월 24일 새벽에 소리바다는 다시 부활한다. ‘슈퍼피어’ 기능을 장착한 ‘소리바다2′가 그 주인공이다. 슈퍼피어란 기존의 커네팅서버를 대신하는 개념으로 특정한 아이피 대역을 정해 거기에 속한 이용자가 슈퍼피어가 되게 하고, 그들을 통해 다른 이용자들이 접속할 수 있게끔 하는 일종의 ‘가상 서버’라고 말할 수 있다.

“법원이 서버 사용을 문제 삼았기 때문에, 슈퍼피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겁니다. 사실 슈퍼피어라고 해도 10킬로바이트도 안 되는 회원정보를 주로 다뤘기 때문에 트래픽에 큰 부담을 주지는 않았죠. 이용자 입자에서는 ‘소리바다1′과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서비스였습니다.”

24일이라는 공백에도 불구하고 소리바다의 회원은 단기간에 회복됐다. 그리고 서버를 없앴기 때문에 소송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게 됐다.

“소리바다가 다양한 소송에 휘말린 건 사실입니다만, ‘소리바다2′와 관련된 소송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서버가 없었기 때문에 꼬투리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슈퍼피어 모델은 소송을 피하기 위한 기술적인 회피 수단이었지 본질적인 처방이라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좀 양심적으로 표현한다면 ‘꼼수’였다고 할까요? 우리가 ‘소리바다2′ 모델을 고집한다는 것은 권리자들과의 합의를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앞서도 밝혔듯이 양대표는 처음부터 권리자들과의 합의를 위해 유료화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소리바다2′는 소송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양대표는 유료화 모델을 일부 도입한 ‘소리바다3′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부분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상세히 언급하도록 하겠다.

<’소리바다1′ 음반복제금지 가처분신청 관련 소송일지>
2000. 8. 한국음반협회 소속 16개 음반사 명의로 가처분 신청
2002. 7. 9. 가처분 신청 인용 결정(수원지법 성남지원)
2002. 7. 31. 소리바다 서버 중단
2002. 8. 24. ‘소리바다2′ 서비스 시작
2003. 2. 14. 가처분 이의신청 패소(수원지법 성남지원)
2005. 1. 12. 가처분 이의신청 항소심 기각 판결(서울고등법원)

음악저작권협회가 주도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한편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가 주도했다. 음악저작권협회는 작사, 작곡, 편곡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이들에 대한 저작권료를 징수해 회원들에게 분배하는 신탁단체다. 음저협은 소리바다에 대한 가처분 신청이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진 직후인 2002년 8월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당시 청구 금액은 1억 3,000여만원이었다.

이 재판도 제법 긴 시간을 끌어 최초 판결은 2003년 10월 24일에 ‘인용한다’는 판결이 났고, 이에 법원은 피고였던 양씨 형제에게 각각 1,960만 3,040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음저협이 청구했던 금액의 약 15%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소리바다는 즉각 항소심을 제기했으나 2005년 1월 25일에 고등법원에서도 ‘인용’ 판결이 났고, 대법원 항고를 포기한 형제가 각각 약 2,000만원의 배상금을 음저협에 지불하는 것으로 손해배상 관련 소송의 막을 내렸다.

<’소리바다1′ 손해배상 청구소송 일지>
2002. 8.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
2003. 10. 24. 손해배상 청구 ‘인용’ 결정(수원지법 성남지원) – 배상금 19,603,040원
2005. 1. 25. 손해배상 청구 항소심 ‘인용’ 결정(서울고등법원) – 배상금 19,103,040원

음반사와 검찰이 주도한 저작권법 위반 형사 소송
끝으로 저작권법 위반 형사고발 사건을 살펴보자. 2001년 1월에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소리바다를 형사고발한 음반사는 우퍼엔터테인먼트, 동아뮤직, 대영에이브미, 신촌인터내셔널 등 4개사였다. 그러나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소리바다의 형사소송건 은 예외적으로 길게 끌었다. 검찰이 음반사의 고발을 접수하고 기소를 한 것이 무려 8개월 가까이 흐른 뒤인 2001년 8월 21일이었고, 최초 판결이 나온 것은 2003년 5월 15일이었으니까, 무려 고발하고나서 2년 4개월이 흘러서야 법원의 판단이 나온 것이다.

왜 이렇게 길게 늘어진 것일까? 검찰은 왜 이 사건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을까? 실제로 그때 검찰의 고민을 표현한 기사를 인용해본다.

인터넷 음악파일 공유사이트인 ‘소리바다’의 저작권 침해 고소사건의 처리여부를 놓고 검찰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검찰은 현재 저작권법 위반혐의에 대한 검토를 마치고도 미칠 파장을 고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관계자는 “법률 검토는 거의 끝난 상태”라며 “하지만 MP3 공유와 관련, 민사적으로 다뤘던 미국 냅스터와는 달리 형사처벌로는 세계 최초이고, 향후 10년 이상 경제적 파장을 미칠 수 있어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중략)

검찰은 소리바다가 기소되고 이용이 금지될 경우 인터넷상의 디지털콘텐츠 유통기술 개발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점과 함께 국내 MP3플레이어 수출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다. 법률적으로는 “개인과 개인을 연결해주는 검색엔진 같은 것일 뿐 MP3의 불법 배포는 없었다”는 소리바다 측 주장도 완전히 배척할 수 없다. 또 지난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한 뒤 현재 450만명에 이르는 가입자들의 반발을 무시하기도 힘들다(경향신문, 2001년 5월 22일, 26면).

기사에도 나온 것처럼 P2P를 형사사건으로 다룬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였다. 지금 돌이켜봐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하면 P2P를 형사사건으로 다룬 사례가 없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형사사건으로 다루지 않았던 이유는 P2P 프로그램 배포행위를 굉장히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위법행위로는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검찰은 2001년 8월 12일 마침내 소리바다를 기소하고야 만다.

그런데 고민스럽기는 법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보통 형사재판은 기소부터 재판까지 수개월 안에 마무리 되는데, 소리바다 건은 무려 두 해나 넘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원의 고민을 덜어준 것은 역시 ‘미국사례’였다. 2003년 4월 18일 미국 연방법원이 MGM스튜디오와 P2P서비스인 ‘그록스터(Grokster)’간의 재판에서 내놓은 판결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록스터 사이트 이미지

미 연방법원은 이때 “그록스터가 냅스터와 달리 음악파일이 들어 있는 중앙 데이터베이스 서버를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작권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그록스터가 설령 권리자가 유통을 원하지 않는 음원을 삭제하려고 해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록스터라는 P2P는 VCR처럼 적법하다는 것이었다. 좀 더 설명하자면 이용자들이 그록스터를 VCR과 마찬가지로 합법적으로도든 불법적으로도든 사용할 수 있는데, 그런 행위를 그록스터가 통제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법적인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형사재판의 참고가 됐던 그록스터 사례
그록스터는 중앙서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리바다의 구조와 거의 흡사했고, 그래서 우리나라 법원은 그록스터의 사례가 알려지고 한 달여 뒤인 2003년 5월 15일에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당시 판결 내용은 “저작권법을 위반한 정범(파일을 불법적으로 유통한 이용자)을 정확하게 제시하지 못한 상황에서 종범(불법유통을 방조한 서비스사업자)인 소리바다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고소인이 제작한 음반을 ‘누가, 언제, 어떻게’ 불법 복제해서 배포했는지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행위를 누군가가 도와줬다고 판단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공소기각’ 판결은 검찰에겐 일종의 수치다. 공소내용 자체가 부실했다는 법원의 지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검찰은 조모씨 등 여러 명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가 있는 정범으로 특정한 뒤 다시 고등법원에 항고했다. 그러나 고등법원 2005년 1월 12일에 다시 소리바다의 ‘무죄’를 선고했다. 그때 법원의 판단은 “소리바다가 피해자인 음반사들로부터 구체적인 침해행위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통보 받은 적이 없고, 또 P2P에서 일어나는 불법행위를 소리바다가 알아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저작물에 대한 복제권 침해행위를 방지해야 할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등법원까지 무죄 선고를 받았던 소리바다 형사소송 건은 대법원에 가서 뒤집힌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2007년 12월 14일에 유죄 취지로 다시 고등법원으로 내려보냈는데, 판결 내용은 “소리바다는 미필적 고의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배포하고 서버를 운영하여 조모씨 외 2명의 복제권 침해 행위를 용이하게 해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를 무죄로 판결한 것은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복제권 및 방조범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소리바다1′ 형사고발 사건 일지>
2001. 1. 4개 음반사, 소리바다 형사 고발
2001. 8. 21. 검찰 기소
2003. 4. 18. 미, 그록스터 무죄 판결
2003. 5. 15. 저작권법 위반 방조 사건, 무죄 판결(서울지방법원)
2005. 1. 12. 저작권법 위반 방조 사건 항소심, 무죄 판결(서울고등법원)
2007. 12. 14. 저작권법 위반 방조 사건 상고심, 무죄 원심 파기 환송(대법원)

사실 고등법원까지 일관됐던 판결 결과가 대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는 매우 흔치 않다. 도대체 대법원 판결이 있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유죄판결을 내렸던 판사가 다시 재판에 참여
프로그램적으로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있기 두 달여 전인 2007년 10월 10일에 ‘소리바다5′에 대한 가처분신청이 고등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이 판결이 갖는 의미가 워낙 컸기 때문에 ‘소리바다1′을 다루는 대법원 최종심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판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상세하게 설명해 올리도록 하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변수는 바로 ‘사람’이었다. 대법원 판결에 참여한 대법관 3명 중 한 명이 과거에 소리바다 관련 다른 재판에 참여해 유죄 판결을 내린 전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2005년 1월에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렸던 ‘소리바다1 가처분 이의사건 항소심’에 참여했던 박모 판사로 당시 이의신청을 기각한 바 있다. 양대표는 이 부분에서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법관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되는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비록 그분이 과거에 참여했던 재판이 민사 사건이었기는 하지만, 같은 대상을 두고 같은 법관이 판결을 내리는데 기왕에 유죄 판결을 내렸던 것을 무죄라고 뒤집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대법원이 같은 사건을 맡았던 법관에게 다시 재판을 맡길 수 있었는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상식으로는 이런 경우가 생길 때 재판에서 제외시키는 시스템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 사례에서는 왜 그게 적용되지 않았는지, 지금도 의문이 갑니다. 그리고 정말 악의적으로 저작물을 뿌려댄 것도 아니고, 법리적으로도 충분히 다툴 여지가 있는 사안을 굳이 형사 사건으로 끌고 와서 기어이 유죄 판결까지 내린 건 지금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로써 소리바다 P2P의 최초 버전인 ‘소리바다1′을 둘러싼 각종 소송은 마무리됐다. ‘가처분 신청’과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일방적으로 소리바다가 패소했고, ‘형사고발’ 사건은 고등법원까지는 소리바다가 승소했다가 마지막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기간으로 보면 2000년 8월에 시작돼 2007년 12월 14일까지 무려 7년 4개월여가 걸렸다.

‘소리바다1′ 관련 소송의 가장 큰 특징은 ‘소리바다와 권리자들과의 충돌’이었다는 점이다. 음반산업협회 소속 음반사들이 주도한 ‘가처분 신청’과 음악저작권협회가 주도한 ‘손해배상’, 그리고 몇몇 음반사가 고발해 검찰이 기소한 ‘형사고발 사건’ 등 모두가 순수하게 권리자 대 서비스사업자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들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음악서비스의 유료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2003년부터는 갈등의 양상이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한다. 소위 권리자들의 위치가 유료 시장에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다음 편에서 상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다음은 ‘2차 분쟁 – 유료 시장의 등장과 변질된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위 포스트는 소리바다의 10년을 되돌아보는 의미에서 소리바다 대표이사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소리바다의 탄생부터 대중화, 분쟁 그리고 현재 / 음악관련 중요한 이슈까지 광범위하게 다뤄질 예정이며 원작자의 동의하에 Talk Soribada에도 함께 개재됩니다. 원문은 괴나리봇짐님의 블로그 http://timshel.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리바다의 꿈은 음악공동체였다.

12월 29th, 2009

[소리바다이야기⑤] 네티즌이 소리바다에 열광했던 이유

“소리바다 서비스를 오픈한 첫날부터 충분히 예측이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회원수가 늘어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단기간에 굉장히 많이 늘어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정환 대표는 소리바다 소프트웨어를 처음 오픈했을 당시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2000년 5월 ‘소리바다’라는 타이틀을 내건 한글 기반의 P2P 서비스가 문을 열었을 때 당시 네티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사실 미국에서 약 1년 전인 1999년 6월에 냅스터가 문을 열고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을 때, 국내 네티즌들도 제법 많은 숫자가 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 이용자들에게는 일종의 갈증 같은 것이 있었다. 당시 냅스터가 한글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냅스터로는 한국음악파일을 거의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갈증을 소리바다가 단번에 해결해준 것이다.

“초반에는 회원수가 만단위로 올로가다가 이내 십만 단위로 올라가더군요. 한두달이 지나고 나서는 마치 2차 방정식의 그래프처럼 증가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습니다. 한 달에 수십만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던 것 같습니다. 수십만명이면 웬만한 중견도시의 인구수인데요, 당시에 소리바다처럼 회원수가 빨리 늘어난 서비스는 없었고, 한 달에 수십만명이 고정적으로 방문하던 사이트도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리바다 초창기 사이트(2000년 6월)

사실이 그랬다. 2000년 5월 출시와 함께 바람을 일으킨 소리바다는 2001년에는 태풍이 되었다. 서비스 개시 4개월만에 75만명이 회원이 모여들었고, 이듬해인 2001년 8월경에는 600만명에 달했다. 그리고 2001년 연말에는 네티즌들로부터 최고의 국산 소프트웨어로 손꼽히기도 했다.

“사람들이 일단 소리바다에 접속하면 좀체 나가지를 않았습니다. MP3 파일 찾기를 마치 보물찾기처럼 재미있어들 했고, 또 그때는 초고속통신망이 대중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한 번 다운로드 받는 데도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연히 동시접속자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에 양대표는 동시접속자 수를 물리적으로 5,000명으로 제한했다. 여기서 5,000명으로 제한한 것은 검색범위를 가리키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이면서 모든 피어(Peer)가 모든 피어를 검색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5,000명이 검색풀이 되면 웬만한 음악은 다 검색됐고, 매우 특이한 음악조차도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이용자들의 반응이 뜨겁게 달궈지면서 소리바다 서비스에 대한 요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때는 형이 P2P 프로그램 개발을, 저는 서버 관리와 서비스 운영 전체를 맡고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개선사항은 이메일을 통해서 받았는데요, 소리통 시절만 해도 저 혼자서도 충분히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리바다 때부터는 하루에 천통이 넘는 메일이 쏟아지면서 도저히 사람이 관리하기가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때 가장 많았던 이메일 내용은 ‘검색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소리바다는 방화벽 뒤에 있든지, 공인아이피 주소가 없다든지 하면 프로그램이 돌아가지를 않았거든요. 저도 그런 내용의 메일을 보면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싶어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으니까요.”

그렇다면, 초창기 소리바다의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그 정도의 회원 규모면 무슨 사업이든지 벌일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와 형에게는 그 엄청난 인적 자원풀을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기술이 없었지요. 그 때는 그저 배너광고 제의가 들어오면 그걸 받아서 처리하는 게 비즈니스의 전부였습니다. 광고서버도 따로 없었기 때문에 제가 직접 업데이트를 했지요. 그때 돈으로 배너 당 몇 백만원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냅스터와는 구조부터 달랐다.

그렇다면 냅스터보다 정확하게 11개월 뒤에 태어난 소리바다는 냅스터와 어떤 점이 달랐을까?

“구조적으로 달랐습니다. 맨처음 소리바다를 만들었을 때는 검색서버를 가운데 두고 피투피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냅스터와 거의 유사한 구조였습니다만, 2~3주만에 완전히 다른 구조로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서버에서 바로 쫓겨났거든요.”

냅스터는 전술했던 바와 같이 피투피 기술에 검색기술을 얹은 형태로 검색서버를 중앙에 두고 있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 검색서버의 존재가 법정에서 냅스터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됐다. 즉 검색서버를 직접 만들고 관리했다는 것이 인터넷 사용자들의 불법 파일교환을 의도적으로 조장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냅스터 이후에 등장한 그록스터나 카자 같은 피투피 서비스들은 검색서버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소리바다는 미국에서 검색서버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기 이전에 검색서버를 사용하지 않고, 피어가 피어를 직접 검색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법망을 피해가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이용자들이 몰리면서 서버를 사용할 수 없게 돼 선택한 궁여지책이었다. 그러나 이런 궁여지책 덕분에 소리바다는 냅스터의 판결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경쟁력을 갖게 됐다. 한국판 냅스터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냅스터보다 더 현실 속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피어들을 연결해준 메시지 기능

하지만 이런 구조적인 문제만 가지고는 소리바다와 냅스터의 차별성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기술적인 부분과 법리논쟁에서는 중요한 이슈가 될지 몰라도,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그다지 다르게 와닿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양대표는 ‘메시지 기능’을 소리바다가 냅스터와 다를 수밖에 없었던 가장 대표적인 점으로 손꼽았다.

“소리바다는 냅스터와 달리 다운로드를 받을 때 상대방 피어에게 메시지, 혹은 쪽지를 날릴 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니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매우 요긴하게 사용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초고속통신망이 그리 발달되지 못했을 때인데요, 본인의 컴퓨터는 물론이고 상대방 컴퓨터도 모뎀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다운로드 속도가 몇십 킬로바이트에서 심지어는 5킬로바이트밖에 나오지 않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하는 곡을 발견했을 때는 ‘제발 나가지 말아달라, 컴퓨터를 끄지 말아달라’라는 식의 메시지가 참 많았습니다. 저도 냅스터를 초창기부터 사용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희귀 음원을 꽤 많이 보유하고 있었는데요, 저부터 그런 쪽지를 참 많이 받았던 걸로 기억 납니다.”

소리바다에는 이런 메시지 기능과 별도로 채팅방도 있었다. 소리바다에 접속한 사람들이면 누구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초창기에는 음란채팅의 온상으로 지목돼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도 있다. 당시 웬만한 채팅사이트에서는 음란채팅이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되었는데, 굳이 소리바다에서 채팅방 서비스를 제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에 소리바다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곳이고, 그곳에서 채팅서비스가 제공되다 보니 여느 채팅사이트에서 발견될 수 있는 부작용도 함께 나타났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채팅방 서비스를 고집한 이유는 몇 마디만 주고받을 수 있는 단순 메시지 기능만으로는 뭔가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음악의 무림고수들이 모였던 채팅방

소리바다가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고집한 채팅방 서비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단순 채팅방이 아닌 ‘음악전문 상담실’로 진화했다.

“소리바다의 채팅방은 단순 채팅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음악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이었습니다. 실제로 시간이 흐르면서 채팅을 목적으로 한 사람들은 다른 사이트로 빠져나갔고, 정말 음악 마니아들 중심으로 방들이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P2P 검색으로도 찾을 수 없는 음원을 채팅방에 와서 요청하면 구해주는 식이었습니다. 음원파일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에 관한 정보, 곡과 관련한 스토리 등 다양한 음악정보들을 채팅방을 통해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방은 록, 발라드, 월드뮤직 등 각각의 음악적 특색을 가지고 분화되었고, 거기를 지키는 분들은 그 분야 최고 고수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채팅방을 지키는 고수들을 통해 음악을 배웠습니다. 굉장히 의미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의미 있는 공간은 안타깝게도 지금은 유명무실해져버렸다. 지난 2008년에 DRM-free 음악서비스에 관한 음악저작물사용료징수규정이 통과되고나서 메이저 음악서비스업체들이 무제한 다운로드서비스를 없애는 조건으로 음원공급계약을 맺은 것이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 사실 채팅방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음원파일의 숫자를 제한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제약이 되기 때문이다. 무제한 다운로드 상품이 사라지고 난 다음 소리바다는 채팅방 사용자들과 상당기간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음원 수급을 위해 계약을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무제한 다운로드 상품을 포기하게 됐습니다만, 그 때문에 채팅방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음악공동체가 와해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분들에게는 가격의 높고 낮음보다는 무제한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그 분들이 채팅방이라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음악이야기를 나누고, 또 파일을 공유하는 데 있어서 150곡이라는 제한은 엄청난 제약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차제에라도 좀 더 가격을 올리더라도 무제한 상품이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소리바다의 P2P서비스는 여느 P2P와는 달리 세부적인 부분에서 음악소비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장치와 기능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는 2000년 당시 국내에서도 다양하게 서비스되고 있었던 P2P서비스들과도 차별화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됐다.

사실 따지고 보면 소리바다가 우리나라의 P2P 시대를 열어젖힌 것은 맞지만, 2000년 당시에 소리바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국내에서도 이미 냅스터를 보고 수많은 개발자들이 P2P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비슷한 시기에 상당히 많은 P2P 서비스들이 등장했고, 또 상용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국내 메신저의 원조격인 디지토닷컴의 ‘소프트메신저2000′, 영산정보통신의 메신저 시프렌드(www.seefriend.co.kr), 소리바다와 같은 달 문을 연 오픈포유(www.open4u.co.kr), 한국판 그누텔라를 지향했던 케이텔라, 씨네프, 신밧드, 넷페논, 카피셀, 엠엔조이, 엠제이커뮤니케이션 등 국산 P2P서비스는 그야말로 ‘수두룩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소리바다에 주로 ‘몰렸다’.

소리바다는 ‘파일’이 아니라 ‘사람’이 있는 공간이었다.

이 점은 소리바다를 평가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음반업계 종사자들은 소리바다를 비난하면서 주로 ‘공짜 프레임’을 갖다 댔다. 무제한 음원다운로드를 공짜로 받다보니 사람들이 몰렸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 논리만 가지고는 왜 사람들이 수많은 P2P서비스를 제쳐두고 소리바다에 주로 몰렸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소리바다에는 공짜, 그 이상이 있었던 것이다. 양대표는 소리바다가 다른 P2P서비스와 달랐던 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저희는 소리바다를 만들 때 처음부터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초창기 소리바다 로고도 그래서 ‘Internet Music Community’였습니다. 단순히 파일만 받고 필요에 따라 떠나는 곳이기보다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기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뭐랄까요, 소리바다에 가면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소리바다 이용자들도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다른 서비스에서 볼 수 없는 충성도를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Internet Music Community’ 로고(2001년 사이트 디자인)

양대표의 말대로 소리바다는 한마디로 목적이 뚜렷했던 P2P서비스였다. 다른 P2P서비스는 모든 형태의 파일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에 반해 소리바다는 MP3파일만을 공유하도록 했고, 앞서 언급했던 메시지와 채팅방, 그리고 파도(다운로드 받는 동안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 프로그램)와 같은 다양한 커뮤니티 서비스를 구비하고 있었다.

고소고발 통해 소리바다의 공동체성 확인

덕분에 소리바다를 중심으로 형성된 음악공동체는 상당히 순도도 높았고, 또 견고했다. 그런데 이들의 공동체성은 역설적이게도 소리바다에 대한 고소고발이 이어지면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소리바다 공동체의 최초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2001년 2월 냅스터가 미국 법원에서 위법판결을 받은 뒤부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사실 이 판결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소리바다를 둘러싼 법리 다툼은 해볼만 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냅스터의 패소 소식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소리바다는 굉장히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됐고, 이를 지켜보던 네티즌들이 소리바다를 지원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물론 소리바다는 초창기부터 냅스터와 달리 검색서버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냅스터의 판례가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정서적인 부분이 더 크게 부각되었고, 국내 법조계도 여론의 흐름을 주시하는 측면이 강했다.

이런 불리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했는데, 당시에 대표적인 사이트 혹은 인터넷 카페로’프리소리바다’(my.dreamwiz.com/freesoribada), 소리바다 이슈사이트(www.freeinternet.jinbo.net), 안티음반협회, 저작권협회(www.freesoribada.wo.to), 소리바다살리기운동사이트(www.antisori.wo.to) 등이 있었다. 이중에는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개설한 것도 있었고, 진보네트워크나 공유지적재산권모임 등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만든 것도 있었다.

소리바다 이슈사이트(www.freeinternet.jinbo.net)

프리소리바다’(my.dreamwiz.com/freesoribada)

검찰 기소에 언론이 움직이다

소리바다 공동체의 두번째 큰 움직임은 2001년 8월 12일 검찰(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이 소리바다를 저작권법 위반 방조혐의로 기소했을 때 일어났다. 이때는 인터넷은 물론이었거니와 특히 언론사들이 적극적으로 논쟁에 참여했다. 기사의 종류도 해설기사에서부터 기고문과 사설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다뤄졌다. 다음은 검찰 기소뒤튿날 문화일보에 실린 취재내용이다.

12일 오후부터 한두건씩 게재되던 글들은 밤새 이어져 13일 오전 9시 현재 1,000여 건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600여 만명에 이르는 소리바다 가입자들의 힘을 합쳐 네티즌의 힘을 보여주자는 내용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소리바다 사이트가 인터넷상의 디지털콘텐츠 유통기술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검찰의 기소는 관련 기술 발전과 국내 MP3 플레이어 수출산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문화일보, 2001년 8월 13일자).

다음은 논단과 사설에 실린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600만명으로 추산되는 소리바다 회원들은 ‘소리바다 살리기운동’을 벌여 약 40여만명이 서명을 마쳤다고 한다. 이들은 주범인 이용자들은 놔둔 채 방조범인 운영자를 기소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고, 이번 기소가 정보 공유가 생명인 인터넷의 자유로운 이용을 저해하는 선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략) 이제 우리도 디지털저작권법 등 보다 정교하고 시대에 맞는 관련법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윤락 알선업자는 영장이 기각돼 방면되는데, 노래 교환사이트 제공자가 기소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세계일보, 2001년 8월 14일자, 설왕설래)

음악파일의 불법유통을 근절하겠다는 게 검찰의 의지이지만 소리바다측과 600만명에 달하는 네티즌들의 반발이 거세 이래저래 법정공방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중략) 소리바다가 국내 인터넷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많은 네티즌들의 참여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중략) 국내 MP3 플레이어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도 소리바다와 같은 사이트들의 활성화가 기반이 됐음은 물론이다. (중략) 정부와 네티즌 역시 인터넷 발전과 저작권 보호를 위해서도 음반제조업체와 소리바다측이 법정 다툼보다는 상호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다같이 힘을 모아줘야 한다(경향신문, 2001년 8월 14일, 사설)

응원가로, 독립영화로 만들어진 소리바다

그리고 세 번 째 큰 움직임은 2002년 7월 11일 법원(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1부)이 한국음반산업협회 등이 낸 ‘음반복제 등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서비스 중단을 명령했을 때 일어났다. 이 판결로 소리바다는 실제 같은 달 31일에 서비스가 중단돼 다음달 25일 ‘소리바다2′가 등장하기까지 폐쇄되는 아픔을 겪었다.

물론 이 때도 네티즌은 물론 언론사들도 일제히 적극적으로 논쟁에 참여했다. 그리고 당시 대학입시의 심층면접에서 이 판결에 관한 질문이 단골로 등장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때는 소리바다 응원가와 소리바다를 테마로 한 독립영화까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응원가는 엄아무개 작곡가가 직접 작사, 작곡, 노래까지 부른 곡으로 가사에는 “소리바다 때메 음반시장 불황이래, 무슨 소리냐, 니네들이 만든 음반 쓰레기들, 만원 값어치나 하는 거냐(1절). 초보 작곡자 시절에 모모 기획사장 만났는데, 외국음반을 주면서 비슷하게 베끼라고 하더라(2절)”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소리바다를 소재로 한 독립영화 MP3파일은 당시 영화 전문 검색사이트인 씨네후닷컴(www.cinehoo.com)이 제작했으며, 신태균 감독에 오세헌, 문영동 등이 주연 배우로 등장했다. 내용은 소리바다를 상징하는 ‘사운드빅뱅닷컴’이라는 음악사이트를 음반업체가 저작권 침해로 고소한 뒤 벌어지는 법정공방을 다루고 있고, 결론은 사이트를 유료화한 뒤 음반업체와 수익을 나누는 것으로 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소리바다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는 이때 정점을 찍고 점차 약해지기 시작한다. 그 원인을 따져보자면 여러 가지를 거론해볼 수 있겠다. 우선 초고속통신망의 전국적인 보급으로 온라인게임과 동영상서비스 등이 인터넷 시장 전면에 나서 소비자의 관심을 분산시킨 것이 가장 컸고, 또 법정공방이 3년을 넘어서면서 대중들에게 지루한 느낌을 주기 시작했으며, 그밖에도 소리바다가 공개적으로 유료화를 선언하면서 사용자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카드 하나를 스스로 버린 측면도 있었다.

소리바다는 카피레프트가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품었던 의문 한 가지가 있다. 과연 소리바다가 처음에는 저작물의 무한공유를 주장하는 카피레프트였다가 법정공방을 거치며 저작권주의자로 변절한 것일까? 양대표는 이 부분에 있어서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저는 저작권자의 의사와 상관 없이 모든 저작물은 공유되어야 한다는 발상에는 처음부터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제 저작물이 아닌 남의 저작물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소리바다가 카피레프트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굉장히 무책임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카피레프트를 주장하려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자기 저작물에 한해서만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초창기 소리바다의 무료 서비스 모델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무료서비스는 사람들을 모으는 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모이게 되면, 그것을 기반으로 다양한 비즈니스모델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방송산업이 대표적이지 않습니까? 대중들은 콘텐츠를 거의 무료로 즐기지만, 거기서 발생하는 광고매출 등으로 제작자와 기타 권리자들에게 일정한 보상이 돌아갑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료화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기대했던 것은 이런 비즈니스모델이었지 무작정 무료로 저작물을 공유하자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음악공동체에 대한 아쉬움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리바다의 음악공동체는 가장 왕성한 시절에 비즈니스모델과 연결되는 데는 실패했다. 앞서 밝힌 대로 법정공방이 장기화되면서 적당한 타이밍을 놓쳤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다시금 조건이 맞아 떨어진다면, 예전과 같은 음악공동체가 다시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양대표는 부정적이었다.

“예전 소리바다처럼 목적성이 뚜렷한 음악 커뮤니티가 다시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 세대가 지났다고 해야 할까요? 당시에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인터넷에서 음악이 핫(hot)한 콘텐츠였기 때문입니다. 좋은 음악파일을 구하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소리바다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정말 많았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에너지들이 게임이나 동영상, 혹은 아이폰과 같은 하드웨어 쪽으로 분산된 것 같습니다.”

양대표는 공동체가 번성했던 때를 떠올리며 진한 아쉬움을 토해냈다.

“소리바다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능동적인 음악공동체는 소리바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음악산업계 전체로 봐서도 매우 소중한 자원이었습니다. 게다가 저희는 그 공동체를 음악산업계 전체와 어느 정도는 공유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구요. 그러나 결국에는 그 공동체가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다시는 음악을 테마로 그런 공동체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아 정말 아쉽습니다.”

(다음은 ’1차 분쟁 – 권리자들과의 갈등과 협상’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위 포스트는 소리바다의 10년을 되돌아보는 의미에서 소리바다 대표이사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소리바다의 탄생부터 대중화, 분쟁 그리고 현재 / 음악관련 중요한 이슈까지 광범위하게 다뤄질 예정이며 원작자의 동의하에 Talk Soribada에도 함께 개재됩니다. 원문은 괴나리봇짐님의 블로그 http://timshel.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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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nd,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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